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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8 17:48 수정 : 2007.01.08 17:48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야!한국사회

1977년 문단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34년 서른두 살로 요절한 김소월의 시작 노트가 사후 43년 만에 고스란히 발굴된 것이다. 그의 노트는 초고에서부터 고쳐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의 시작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더구나 새로 발굴된 그의 미발표작 가운데는 ‘나아가 싸우라, 즐거워하라’는 식의 일본식 구호는 우리 민족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항변을 담은 시도 있어서 민족주의적인 그의 시들이 왜 미발표로 남아 있어야 했는지 짐작게 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김소월의 자작시들 사이에 김소월의 스승 김억의 시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한참의 논란 끝에 놀랍게도 김억이 제자의 시를 자기 시로 둔갑시켜 발표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김소월은 정주에 살면서 시를 쓰면 스승에게 보내드렸고 스승은 그의 시를 지면에 소개해주고 있었다. 김소월이 요절한 뒤 아무도 알 길이 없는 김소월 시 몇 편을 김억이 자신의 시로 발표한 것이었다. 저승에 있는 소월이야 자기를 열다섯 살부터 지도해 준 스승이 자신의 시 몇 편 도용했다고 해도 눈감아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문단으로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교수들의 논문 표절 시비로 시끄러운데 마광수씨의 시 도작 사건은 한국 사회를 한층 참담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표절과 도작에는 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깊은 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졸업생당 노벨상 수상자 수가 세계 최고라는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칼텍은 시험문제를 교수가 내주면 학생이 집에서 풀어서 낸다고 했다. 교수는 오픈북인지와 시험 시간만 정해주면 학생이 집에서 풀어서 제출하고, 교수는 채점해서 성적을 평가한다. 학생이 책을 보면서 문제를 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그것은 커닝인데 누가 그럴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데, 질문을 하는 내가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당황하고 말았다. 필자의 의과대학 시절 시험 직전에 나와 동급생 거의 모두가 책상에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을 베껴두던 생각이 났다. 책상과 교실의 벽까지 커닝 페이퍼로 도배가 되어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험제도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보고서를 낼 때 친구들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껴서 내곤 한다. 도리어 리포트 빌려달라고 할 때 안 빌려주면 의리 없는 친구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서는 남의 리포트 빌려달라고 했다가는 범죄자나 파렴치범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한 변호사는 법대 재학시절 리포트를 베껴낸 것이 들통 나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남의 글을 표절하거나 도용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남의 글을 표절하거나 도용하면 ‘인생 종치는’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파렴치한 일을 해도 몇 달 뒤에는 슬그머니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말 할 것이다. “한국은 석 달만 버티면 돼. 너무 걱정 마!”

이번에야말로 마광수씨가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때가 온 것으로 안다. 남의 글을 도용하고도 뻔뻔스럽게 변명을 하는 그런 양심을 가진 사람이 대학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함부로 책을 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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