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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26 17:07 수정 : 2007.02.26 17:07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야!한국사회

며칠 후면 각 학교가 서둘러 입학식을 치르고 신입생을 맞이할 것이다. 나이가 드니 나도 잔소리꾼이 되는가. 이들 대학 신입생에게 딱 한 가지 당부만을 하고 싶다.

제발 표절한 숙제를 제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가 아니다. 열심히 안 해도 좋으니, 적어도 표절한 숙제로 때우고 넘어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자들의 잇따른 표절 사태에서 보듯 이것은, 절도 혹은 사기라는 범죄행위다. 숙제의 표절이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바로 이 점이 문제다.

숙제 베끼기란 늘 하는 짓이라고 허허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친구 숙제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터넷의 리포트 사이트에 들어가서 돈을 주고 리포트를 내려받아 제출하는 데에 이른 것이다. 그 리포트를 파는 사이트에는, 온 대학 선생들이 내준 리포트 주제와 해당 숙제글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펌질’로 여기저기 블로그에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공짜로 내려받아 제출할 수도 있다.

학생은 열심히 ‘자료조사’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숙제를 내준 선생이 요구하는 자료조사란,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과 논문을 찾는 일이었다. 책과 논문을 읽고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섭취해야만 새로운 글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과정이 학습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완성품으로 정리된 글을 찾아 제출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학습효과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리포트를 거래하는 사이트의 존재는 문제를 훨씬 심각하게 만든다. 돈을 주고받는 합법적인 자본주의적 거래를 했기 때문에, 자신의 표절 행위까지도 합법적인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숙제 표절이라는 사기를 부추기는 사이트가 분명함에도, 그저 글을 파는 행위만으로는 불법이라고 할 수가 없어, 버젓이 텔레비전에 광고까지 내며 성업을 하고 있다.

선생이 겪는 표절 숙제와의 싸움은 힘겹다. 우선 숙제를 받아 읽어보는 것만으로는 표절 여부를 거의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같은 숙제를 낸 ‘재수 없는 학생’이 있으면 쉽게 가려지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어느 해인가 나는, 나의 글의 일부를 고스란히(조사 하나 바꾸지 않고) 베낀 글을 받은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학생은 어디선가 떠돌아다니는 글을 퍼왔을 것이고, 재수 없게 그 글이 하필 선생의 글이었던 셈이다. 부지런하고 꼼꼼한 젊은 선생들은, 아예 그 리포트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을 하고 자신이 낸 과제에 해당하는 글들을 검색하여 모두 읽어본 후 과제물을 채점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사기 치기를 부추기는 사이트에 돈까지 내면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선생은 이 리포트 사이트에 올라 있지 않은 참신한 과제를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한 학기만 지나면 그 과제와 답안은 다시 리포트 사이트에 올라가 있다. 학생이 자신이 쓴 리포트를 그 사이트에 팔았기 때문이다.

공부는 둘째치더라도 제발 최소한의 윤리의식만이라도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나 점수 공지가 끝난 후, 학점을 올려달라고 전화하는 학부모까지(학생은 물론이거니와) 있는 것을 보면(여기에는 대개 장학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등의 거짓말이 따라붙는다), 윤리보다 학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적지 않은가 보다.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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