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05 17:31
수정 : 2007.03.05 17:31
|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
야!한국사회
운전을 하다 보면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을 드물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특히 국도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 스쳐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동물의 사체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그것도 특정 속도 이상으로 질주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에 적응하지 못한 존재들은 이렇게 무참하게 희생될 수밖에 없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게, 고속도로에서 전 국민이 한 방향으로 일제히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인들을 만나면 온통 집값과 사교육비 고민으로 가득하다. 자고 나면 껑충 치솟는 집값과 혹시 뒤처질세라 자녀 교육에 올인하느라 고달픈 게 대한민국 국민의 현실이다. 집값 폭등과 교육 열풍을 두고 다들 정상이 아니라고 고개를 내젓기는 하지만 이것에서 초연하게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느린 속도로 가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 ‘딴 짓’은 자칫 고속도로에서의 역주행처럼 위험천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각종 국제 경기에서 유난히 순위에 집착하고, ‘최초’나 ‘최고’라는 말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받아들이는 풍조는 유난히 파란이 많았던 ‘대한민국’에서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남보다 조금 앞서가는 것이, 그리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행복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을 이제는 돌아볼 때가 온 듯하다.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혈압과 정신건강이 경제력보다 행복을 재는 척도로 더욱 유효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고 한다. 혈압 질환자가 많고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많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낮게 나타난다는 보고를 깊이 공감하게 된다.
돌아보면 우리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무언가를 따라잡느라 보내왔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성적을 얻기 위해, 사회에 나와서는 주어진 업무와 재테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하다못해 최신 기기들의 복잡한 기능을 따라잡느라 말이다. ‘열심’이 가능했던 건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계층 간 격차가 극심해진 요즘 그 ‘언젠가는’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다소 약해진 듯하다. 그럼에도 그 ‘열심’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어렴풋한 미래의 희망 때문이 아니라 자칫하면 이 사회에서 도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올 연말에는 대선이 있다. 유난히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대선 주자들이 한결같이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을 외칠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과 만족을 이룰 수 있는 경제적·정신적 여유를 원한다. 그러나 집값과 교육비라는 덫에 걸려 우리의 삶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유력한 예비 대선주자들은 경제 살리기를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을 정책이 혹 서민들의 소박한 삶의 소망을 도외시한 채 극소수의 사람들만을 승자로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것은 지난 우리 삶에서 얻은 학습 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쟁의 속도와 방향에 맞춰갈 수 없는 사람들도 피해의식을 갖지 않고 자신의 계획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삶의 조건을 예비 대선주자들이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후보를 평가하는 나의 기준은 대한민국을 앞서가게 할 수 있는 리더십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전 국민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더라도, 남들과 다른 삶을 지향하고 다른 속도로 살더라도 두려움 없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가능케 하는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