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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07 17:46 수정 : 2007.03.07 17:46

이명원/문학평론가·<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야!한국사회

최근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일제 강점기 군대 위안부 문제를 두고 기묘한 망언을 거듭하고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증명할 만한 좁은 의미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주변국들의 즉각적인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아베를 포함하여 일본의 극우 성향 정치인들은 망언을 반복한다. 망언이 반복될 때마다 주변국들은 심각하게 항의하고, 또 그것이 아시아의 우호관계를 일시적으로 경색시키지만,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

아베 총리의 발언을 들으면서, 나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인식론의 기본형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에 대한 자기기만이 그것인데, 이 자기기만 논리는 대단히 뿌리가 깊은 것이어서, 식민주의적 역사 전체에 대한 책임 면제 논리로 항용 발전할 태세를 갖추게 한다.

최근에 번역된 <태평양 전쟁의 사상>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깊어졌다. 이 책은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직후에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들이 벌인 ‘근대의 초극’,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이라는 좌담을 번역한 것이다. 이 좌담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지식인들의 전쟁 협력론에서 가장 강력하게 울려퍼지는 인식의 기본형이 자기기만 논리다.

가령 이 좌담 지식인들은 일본이 수행하는 침략전쟁이 서구유럽의 근대적 아시아 침략에 대항하는 방어전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만주사변과 뒤이은 중-일 전쟁은 유럽 제국주의 세력들이 강제로 분할할 위기에 놓인 중국을 보호하고자 출병한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동남아시아 침략 역시 유럽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로 전락한 아시아에 대한 해방전쟁으로 합리화되고, 미국과의 태평양전쟁 역시 일종의 문명전쟁, 곧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의 일전인 동시에 세계사적 전환기에 동양적 윤리의 탁월성을 증명하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대아시아 침략 및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을 세계사적 사명으로 자각한 이들 극우 지식인들이 ‘도덕’이라거나 ‘윤리’의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러-일 전쟁부터 시작해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30년 전쟁은 유럽중심의 일원적 세계사를 다원적 세계사로 변혁하려는 일본의 ‘도의적 에너지’의 표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제국주의나 파시즘과는 다른 일본적 전쟁의 논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은 아시아에 대한 무한한 세계사적 책임과 윤리로 전쟁을 시작한 것이며, 그 궁극적인 목표란 일본의 지도 아래 미개한 아시아 여러 나라가 공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대동아 공영권 구축을 통해, 서구적 근대의 해악을 초극하는 ‘팔굉일우’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일본의 세계사적 사명이 있다는 것이 논의의 결론이다.

이들이 좌담을 통해 펼치는 화려한 현학의 수사를 걷어내고, 그 인식론의 기본형을 추출하면 ‘나르시시즘적 자기기만 논리’라는 것을 우리는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도의니 윤리니 하면서 전쟁을 합리화하지만, 거기에는 침략의 대상국이 되었던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가주권이라는 타자성은 완벽하게 소거돼 있다. 대신에 거의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나르시시즘적 ‘구원 논리’가 강렬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일본적 자기기만, 나르시시즘, 구원의 사상이 일본 극우파의 과거와 현재를 이룬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명원/문학평론가·<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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