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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6 17:57 수정 : 2019.11.07 13:51

서복경ㅣ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지난주 국회에는 법안 접수가 폭주했는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벼락치기 숙제가 이유였다. 당 지도부가 현역 의원 상당수를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방향을 세웠고 발의 법안 수를 주요 기준으로 삼았는데 평가 기한이 10월31일이었단다. 자유한국당은 당대표가 당 밖에서 찾은 ‘인재들’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21대 총선 각 정당 후보 지명 과정과 관련이 있다. 유권자들이 각 당 후보 지명 과정을 유심히 보며 채점표를 매길 시간이 왔다.

역대 우리나라 정당들의 공천을 생각하면 ‘인재 영입’ ‘현역 의원 몇% 배제’ ‘공천 갈등과 탈당’이 키워드로 떠오른다. 그렇게 된 데는 나름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민주화 이후 유권자들은 독재체제의 그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회변화와 정치문화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등장을 바랐다.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당 밖에 있는 ‘정치 신인’들을 찾아 나섰다. 문제는 30년 넘게 ‘정치 신인’을 찾다 보니, 그 신인들의 정체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매번 각 정당 지도부들은 당 밖에서 ‘인재들’을 데려왔는데, 대체 그 사람이 왜 ‘인재’인지 알 수가 없게 돼 버렸다. 때로 그 ‘신인’들은 당 지도부의 비민주적 공천권 행사와 당 장악 도구가 되기도 했고 거액의 공천헌금을 낸 돈줄이 되기도 했다.

당 밖에서 데려온 사람들을 공천하려고 보니 현역 의원들로 꽉 찬 자리를 비워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자발적으로 나가는 의원은 적었고, 당 지도부는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기준을 세워 현역 의원들을 잘라냈다. 미리 합의해놓은 규칙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 자르기 위해 기준을 세우다 보니, 불복하고 탈당하는 의원들이 매번 생겨났다. 당대 지도부와의 거리가 중요한 잣대라는 불신도 강력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정당들에서 ‘친이계’ ‘친박계’는 공천권 전횡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당 안팎의 집단들이 아니었나.

‘현역 의원을 몇% 자르고 당 밖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관행이 바람직한 제도처럼 굳어져버린 데에는 19대와 20대 총선 제1, 2당의 비상대책위가 한몫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을 비대위 체제로 치렀다. 공교롭게도 두 비대위에 함께 몸담았던 사람이 김종인씨다. 위기에 처했던 두 당은 외부 인사로 구성된 비대위에 칼자루를 쥐여주었고, 비대위는 그 칼로 일부 현역 의원을 잘라내고 당 밖의 사람들을 데려와 쇄신의 이미지를 덧씌워주었다. 일종의 위기대응 매뉴얼이었던 셈이다.

위기대응 매뉴얼은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가 30년이 넘었다. 정당들은 지방정부, 지방의회 선출 공직을 경험한 정치인들의 풀을 축적해왔고 지역구 당협위원회, 부문이나 직능 위원회도 운영해왔다. 이제 당 밖의 인재 영입에 매달릴 게 아니라 당내 경선을 제대로 조직해서 후보를 만들어내는 접근을 해야 한다. 당의 정체성에 비추어 꼭 필요한, 당 밖의 사람을 공천할 수는 있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여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당원 대상 정견발표회나 토론회 한번 없이 700명 표본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라는 게 아니다. 그건 경선이 아니라 여론조사일 뿐이다. 지역구 후보는 선거구 대의원이나 당원대회에서, 비례후보는 당내 직능위원회나 부문위원회 당원대회에서 정견을 발표하고 수차례 토론을 거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게 해야 한다. 그다음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 능력이 부족한 현역 의원은 당 지도부가 매번 새로 만드는 규칙이 아니라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걸러져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당연히 번잡하고 시간과 돈이 들고 시끄럽다. 하지만 언제까지 비대위 운영하듯이 정당을 운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유권자들도 후보 결정을 위해 경쟁자들의 토론회, 정견발표회에 당원과 유권자를 초대하는 정당들, 투표 결과로 승자를 발표하는 정당들을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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