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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02 18:32 수정 : 2018.01.02 23:45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다른백년연구원장

공자님은 마구간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사람은 상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공자님이 말에 대해 묻지 않은 이유는 말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을 제일 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를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 미국 링컨 대통령은 “노동은 자본에 우선하며, 자본은 노동의 과실일 따름이다. 노동이 먼저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본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노동이 더 존중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 대통령이 교회가 왜 노동문제에 개입하느냐고 따져 묻자 “물질은 공장에서 값있는 상품이 되어 나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은 그곳에서 한갓 폐품이 되어 나옵니다”라고 교황 비오 11세의 ‘사십주년’을 인용해서 답했다.

그러나 개발독재와 그 긴 그림자 속에서 발전의 길을 걸어온 한국에는 이러한 경구를 비웃는 일이 수십년 반복되고 있다. 1970년대 말 어떤 공장에서 노동자의 손이 기계에 끼여 기계가 멈췄을 때, 공장장이 급히 달려와 “기계에는 이상이 없느냐”고 물었다. 거금 2억원에 들여온 기계가 먼저 생각났기 때문이다. 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백명이 깔려 죽어가고 있을 때, 사고를 알고도 먼저 빠져나간 이준 사장은 경찰에 출석해서 “무너진다는 것은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우리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라고 말했다.

한국의 일터나 공공시설은 거의 ‘사람’보다는 ‘말’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 불은 언제 어디서나 날 수 있다. 마구간에 불이 날 경우 말보다 사람을 더 위험에 빠트리는 그런 건축물을 짓지 못하게 하고, 말만 구출하고 사람은 죽게 내버려둔 주인을 처벌하는 일은 지금 할 수 있다.

2009년의 쌍용차 파업과 용산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백혈병 사망 사건, 그리고 지난해 제천의 화재 참사로 인한 수많은 인명피해의 원인은 거의 같다. 바로 자본을 귀하게 여기고 노동을 천하게 여기며,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보다는 이윤을 앞세운 대기업의 논리와 위세에 공권력이 쉽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매년 천여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수백명이 과로사로 사망해도 그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는 이유는 한국의 가장 힘있는 세력과 공권력이 사람을 앞 순위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오늘 가톨릭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성모병원은 노조를 심하게 탄압했고, 결국 250명의 조합원은 10명만 남았고 노조지부장인 간호사 이은주씨는 사망했다. ‘죽음의 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산재로 숨진 사람은 31명이었고, 그 대부분은 하청기업 노동자들이었다. 모기업인 현대의 어떤 경영자도 처벌되지 않았다. 1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30여건의 사고가 미리 일어난다고 하니 오늘 한국의 대기업에 축적된 거대한 부는 매년 수만명, 수십만명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지불되어야 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얻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한국의 일터나 공공시설은 거의 ‘사람’보다는 ‘말’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 불은 언제 어디서나 날 수 있다. 간접고용된 사람,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하급 사무직은 불이 나면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고 이오덕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몸으로 일하겠다는 아이”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국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의 목숨보다 돈을 중히 여기는 기업가, 정치가, 종교인, 관료들이 이 국가를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마구간에 불이 날 경우 말보다 사람을 더 위험에 빠트리는 그런 건축물을 짓지 못하게 하고, 말만 구출하고 사람은 죽게 내버려둔 주인을 처벌하는 일은 지금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작년에는 ‘노동존중 사회’를 강조했다. 그런데 그것이 추상적 구호로 머물지 않으려면 결연한 정치적 실천과 이해 조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예해방 선언을 했던 링컨은 목숨까지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위험까지 각오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노동을 존중받지 못하게 하는 법과 제도, 그 힘과 의식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한 다음 국회와 힘을 합쳐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2018년, ‘사람이 먼저’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정책, 법, 제도로 구현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일터는 전쟁터이며 매일 수많은 전사자나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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