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다른백년연구원장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제일주의’ 노선으로 확고하게 전환한 김정은의 절박함보다 어쩌면 한국의 ‘을’들이 더 절박한 상태에 있을지 모른다. 종전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주민들이 주권자로서 존중받고 인간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 ‘그릇된 편견과 관행’을 끊어 버리고 “이 자리에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과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깔려 있겠지만,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공존하게 되어 북한을 ‘정상국가’의 길로 나가지 못하게 만든 반미, 핵개발, 군사주의의 족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핵 보유는 트럼프를 회담에 나오게 만들어 북한의 체제 보장을 얻어낼 수도 있지만, 북한 인민들의 삶과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발목을 잡는 과거’, ‘그릇된 편견과 관행’은 북한에만 있는 것일까? 김정은을 북-미 회담에까지 나오게 만든 것은 남한 내의 유사한 ‘편견과 관행’과 단절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서 왔고, 그 의지는 바로 한국 촛불시민이 준 것이다. 절대권력자 김정은은 개인적으로 결단을 했을지 모르나,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북-미 정상회담 매개자 역할은 바로 냉전과 분단을 이용해온 세력들이 저지른 온갖 탈법과 부정, 권력농단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촛불시민의 분노가 집약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물론 주변국에는 여전히 이 전쟁 상태라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는 기득권 권력이 확고하게 구축되어 있고,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 움직임을 흔들어댄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공화·민주 양 기득권 세력, 일본의 우익 보수 세력은 한반도 전쟁과 긴장의 수혜자들이다. 그들의 지속적 선전과 교육에 세뇌된 미국, 일본, 한국의 기성세대는 대체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일본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지난 지자체 선거 전 자유한국당은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구호로 선거에 임했는데, 선거 결과 대구·경북과 제주도만 남기고 모든 광역자치단체가 ‘파란색’으로 칠해지자, 홍준표 대표는 “나라가 통째로 넘어갔다”고 일갈하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70년의 분단과 적대는 그들에게 마르지 않는 꿀단지를 제공해주었지만, 꿀단지가 깨어지자 ‘나라’가 망했다고 외친 셈이다. 그런데 지난 70년 동안의 사실상의 전쟁 상태는 북한만을 비정상국가로 만든 것이 아니다. 남북한은 거울에 비친 ‘나’처럼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는 상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면 거울 속의 나도 움직였다. 그리고 양쪽의 권력자들은 다른 쪽의 위협을 내 권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했다. 한국에게 북한은 나와 무관한 타자가 아니라 나의 존재를 규정해왔고, 사실 내 속에 스며들어와 있었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면 당연히 남한도 정상국가로 가야 한다. 간첩조작, 색깔시비, 공안몰이, 블랙리스트,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국가보안법,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유물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정상국가의 첫번째 목록에 불과하다. 이런 1차 비정상성에 의해 만들어진 2차 비정상성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결손, 안보와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한 모든 형태의 특권 체제다. 정치권과 사법부의 과도한 특권, 매우 약체화된 시민사회, 지방의 식민지화, 재벌, 사학, 대형교회의 세습 등은 분단이 만든 신봉건주의, 즉 헬‘조선’이었다. ‘북한 사회주의’라는 유령을 들먹이며 누려온 한국의 모든 특권 질서가 바로 비정상의 둘째 목록들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를 앉힌 지금까지의 법과 행정은 ‘사유재산’의 ‘자유’를 종교의 차원까지 승격시킨 특권 체제의 결과다.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제일주의’ 노선으로 확고하게 전환한 김정은의 절박함보다 어쩌면 한국의 ‘을’들이 더 절박한 상태에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재벌 몰아주기, 저복지, 공공영역의 취약성 등 ‘사회’의 실종으로 한국의 청년, 노년은 물론 중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가 행복하지 않다. 종전과 평화가 이러한 경제 문제를 당장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종전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주민들이 주권자로서 존중받고 인간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종전은 한국전쟁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함께 ‘정상국가’로 가는 길이며,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민중들이 정상국가의 ‘주권자’가 되는 길이다.
칼럼 |
[김동춘 칼럼] 종전, 정상국가의 주권자가 되는 길 |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다른백년연구원장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제일주의’ 노선으로 확고하게 전환한 김정은의 절박함보다 어쩌면 한국의 ‘을’들이 더 절박한 상태에 있을지 모른다. 종전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주민들이 주권자로서 존중받고 인간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 ‘그릇된 편견과 관행’을 끊어 버리고 “이 자리에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과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깔려 있겠지만,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공존하게 되어 북한을 ‘정상국가’의 길로 나가지 못하게 만든 반미, 핵개발, 군사주의의 족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핵 보유는 트럼프를 회담에 나오게 만들어 북한의 체제 보장을 얻어낼 수도 있지만, 북한 인민들의 삶과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발목을 잡는 과거’, ‘그릇된 편견과 관행’은 북한에만 있는 것일까? 김정은을 북-미 회담에까지 나오게 만든 것은 남한 내의 유사한 ‘편견과 관행’과 단절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서 왔고, 그 의지는 바로 한국 촛불시민이 준 것이다. 절대권력자 김정은은 개인적으로 결단을 했을지 모르나,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북-미 정상회담 매개자 역할은 바로 냉전과 분단을 이용해온 세력들이 저지른 온갖 탈법과 부정, 권력농단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촛불시민의 분노가 집약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물론 주변국에는 여전히 이 전쟁 상태라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는 기득권 권력이 확고하게 구축되어 있고,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 움직임을 흔들어댄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공화·민주 양 기득권 세력, 일본의 우익 보수 세력은 한반도 전쟁과 긴장의 수혜자들이다. 그들의 지속적 선전과 교육에 세뇌된 미국, 일본, 한국의 기성세대는 대체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일본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지난 지자체 선거 전 자유한국당은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구호로 선거에 임했는데, 선거 결과 대구·경북과 제주도만 남기고 모든 광역자치단체가 ‘파란색’으로 칠해지자, 홍준표 대표는 “나라가 통째로 넘어갔다”고 일갈하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70년의 분단과 적대는 그들에게 마르지 않는 꿀단지를 제공해주었지만, 꿀단지가 깨어지자 ‘나라’가 망했다고 외친 셈이다. 그런데 지난 70년 동안의 사실상의 전쟁 상태는 북한만을 비정상국가로 만든 것이 아니다. 남북한은 거울에 비친 ‘나’처럼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는 상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면 거울 속의 나도 움직였다. 그리고 양쪽의 권력자들은 다른 쪽의 위협을 내 권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했다. 한국에게 북한은 나와 무관한 타자가 아니라 나의 존재를 규정해왔고, 사실 내 속에 스며들어와 있었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면 당연히 남한도 정상국가로 가야 한다. 간첩조작, 색깔시비, 공안몰이, 블랙리스트,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국가보안법,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유물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정상국가의 첫번째 목록에 불과하다. 이런 1차 비정상성에 의해 만들어진 2차 비정상성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결손, 안보와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한 모든 형태의 특권 체제다. 정치권과 사법부의 과도한 특권, 매우 약체화된 시민사회, 지방의 식민지화, 재벌, 사학, 대형교회의 세습 등은 분단이 만든 신봉건주의, 즉 헬‘조선’이었다. ‘북한 사회주의’라는 유령을 들먹이며 누려온 한국의 모든 특권 질서가 바로 비정상의 둘째 목록들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를 앉힌 지금까지의 법과 행정은 ‘사유재산’의 ‘자유’를 종교의 차원까지 승격시킨 특권 체제의 결과다.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제일주의’ 노선으로 확고하게 전환한 김정은의 절박함보다 어쩌면 한국의 ‘을’들이 더 절박한 상태에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재벌 몰아주기, 저복지, 공공영역의 취약성 등 ‘사회’의 실종으로 한국의 청년, 노년은 물론 중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가 행복하지 않다. 종전과 평화가 이러한 경제 문제를 당장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종전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주민들이 주권자로서 존중받고 인간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종전은 한국전쟁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함께 ‘정상국가’로 가는 길이며,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민중들이 정상국가의 ‘주권자’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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