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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30 18:14 수정 : 2019.07.31 10:53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아베의 반도체 수출규제와 과거사 문제 제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단호한 대처는 역대 어느 정부의 대일 정책과 비교해보더라도 진일보한 것이다. 한국인들의 자발적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반일감정 역시 당연한 것이다. 아베는 커져가는 한국의 힘을 제압하려는 의도를 확실히 갖고 있는데, 그렇다면 한국은 21세기 방식 항일투쟁에 나서야 하나?

한국과 일본 간의 과거사는 식민지 책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고, 이 점에서 한-일 관계는 과거 독일과 주변 유럽국가 간의 관계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세계 어떤 제국주의 국가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거나 배상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래서 한-일 분쟁이 국제 법정에 가면 일본한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은 언제나 일본 편이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는 일본의 모든 식민지 침략 과거사를 덮어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틀 안에 있었다. 이 강화조약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후질서 재편 전략의 일환이고, 일본을 미국 주도의 새 국제질서에 복귀시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한-일 관계는 한-미-일 관계였다. 개항 뒤 150년 동안 한국이 겪은 비극의 배후에는 언제나 미국과 영국 등의 묵인과 지원이 있었다.

그래서 식민지 책임을 ‘배상’으로 인정받자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세계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강제노동을 당한 유대인들이 독일 기업을 상대로 이긴 판결과는 성격이 다르고, 정치적인 이유로 리비아에 배상을 한 이탈리아와도 다르다.

한편 한국인 모두는 피해자이고, 일본과 옛 제국주의 국가는 모두가 가해자인가? 오늘 이 갈등은 아베의 새로운 대일본 제국 건설 기도, 일본의 보수 집권세력이 식민지 강점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 것이나,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인 과거 조선 지배층과 친일세력, 그리고 반공과 성장의 이름으로 일본의 과거를 눈감아준 역대 정권,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려 한 박근혜 정부와 외교부, 양승태 사법부의 잘못도 있다.

한편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담에서 한국은 일본과 영국의 로비 때문에 배제된 것은 틀림없으나, 이 회담이 서둘러 추진된 중요한 계기는 6·25 전쟁이었다. 한반도의 전쟁은 한국을 전후 국제사회의 종속변수로 만들었고,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의 틀 내에서 과거사를 접고, 성장 전략을 추구하게 되었다. 박정희가 일본의 식민지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한-미 동맹 때문이었고, 경제성장이 다급한 시대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1965년 당시 일본이 ‘경제협력자금’ ‘독립 축하금’으로 준 5억달러를 ‘보상금’이라고 말해왔다. 사실을 호도한 셈이었다. 일본이 국민들에게 침략의 과거사를 가르치지 않은 것처럼, 한국도 항일독립운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즉 100년의 한·일 과거사의 굴절은 미·일 동아시아 질서의 하위 주체인 한국의 보수 세력의 협력에 의해 지탱되었다. 그들의 명분은 과거나 현재나 ‘경제’, 즉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필요하다면 ‘피’를 버리고 ‘돈’을 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 1965년 한-일 체제, 1951년 미-일 체제, 더 거슬러 올라가 1910년 미·일·영 등 열강 주도 지배체제를 뒤흔든 것은 한국의 민주화였다. 문재인 정부의 힘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아베와 일본의 보수 세력, 그리고 한국 내 친일/친미 세력은 민주화로 인해 변화된 한국의 위상을 보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한다. 아베의 반도체 수출규제는 일본이 마음먹으면 한국한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일본의 한국의 급소 공격은 그 피해가 한국에 그치지 않고 국제무역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그래서 오늘의 한-일 관계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풀기 어려운 숙제를 들추어냈고, 한국은 그 최전선에 있다. 한국 단독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나? 없다. 부품 소재 국산화하겠다고 규제 완화하고 특별연장근로 실시해서 기업 경쟁력 키워주면 일본을 이길 수 있나? 없다.

이 싸움에서 한·일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승리할 수는 없다. 한국으로서는 남북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는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전제다. 대기업의 시장 약탈이 시정되어야 독자적인 기술 축적이 가능하고, 서민대중의 ‘애국심’이 발휘될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가 1965, 1951, 더 나아가 1910년 체제를 뒤흔들고 있듯이, 한-일 관계에서도 민주주의와 복지 선진국이 ‘조용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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