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에 아무리 좋은 물감으로 근사하게 금을 긋는다고 해도 호박이 수박으로 변하진 않는다. 사슴을 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다 해도 사슴은 말이 될 수 없다. 역시 국정 교과서 앞에 ‘올바른’ ‘균형 잡힌’ 등의 어떠한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고 한들 국정 교과서는 그저 국정 교과서일 뿐이다. 이렇게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무시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우행을 박근혜 대통령이 벌이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의 위험성은 그것이 호박과 사슴을 왜곡하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관, 학문·사상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사람의 생각,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옥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교과서 국정화는 나라가 시민의 생각을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통제하겠다는 선언이다. 전사자의 혼령까지 나라가 관리하려는 일본의 야스쿠니신사와 하등 다를 게 없다. 독재·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할수록 교과서 제도가 국정에서 검인정, 검인정에서 자유발행제로 변천해온 것은 생각의 자유와 다양성이 민주주의의 본질임을 말해준다. ‘백두 혈통’의 왕조 세습체제인 북한이 국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데 반해 민주주의를 아래로부터 쟁취해온 남한이 검정제를 취하고 있는 것만큼 북한 체제에 대한 남한 체제의 우위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한마디로, 교과서 발행제도는 민주주의 발전사의 나이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거꾸로 돌리려는 작업에 전국의 대학 선생, 지식인들이 좌와 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들불처럼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국정화 작업이 그들이 생명줄로 삼고 있는 학문·사상의 자유를 억압·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리라. 이런 맥락도 모르고 국정화 작업이 아버지가 통치했던 유신시대처럼 대통령의 눈짓 하나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커다란 착각이자 몽상이다. 지배자 한 사람이 자기 맘대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일은 기원전의 고대시대에서조차 가능하지 않았다. 연·위·제·조·진·초·한의 7개국이 쟁패를 다투던 전국시대의 혼란을 평정하고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진시황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고 가장 힘이 셌던 시기인 기원전 213~212년 자기중심의 역사만 남기고 이견을 봉쇄하기 위해 진나라의 역사와 의술, 농경 등에 관한 책 이외의 모든 책을 태우고, 460여명의 유생들을 잡아들여 생매장하는 ‘분서갱유’를 자행했다. 진시황은 이것으로 자기중심의 역사가 영원히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인류 최초이자 최대의 폭정이란 유산만 후대에 남겼다. 그 뒤로도 여러 나라에서 많은 독재자들이 금서다, 검열이다, 투옥이다 하면서 진시황 흉내를 되풀이했지만 실패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문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만리장성과 책들>이란 에세이에서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거론하며 “어쩌면 시황제가 서책들을 없애버리려 했던 것은 책들을 통해 자신이 비난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황제가 모든 과거를 지워버리려 했던 것은 아마도 모후의 비행이라는 단 하나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라고 썼다. 위 문장에서 ‘모후’를 아버지, ‘자신’을 우익세력 등으로 몇 단어만 바꿔 끼우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하는 박 대통령의 속마음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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