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실패하고 있다. 나라 얼굴에 먹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무엇이 어떻길래 그렇게 자신 있게 단정하느냐고 묻는다면, 최대 외교 치적으로 자랑하던 ‘역대 최상의 한-중 관계’, ‘미·중 양쪽으로부터의 러브콜’의 현주소를 찾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전하라 하겠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던 박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호기는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되물어 보라고 하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한 지난해 말부터 북한의 핵·로켓 도발에 대한 대응이 집중된 2월 말까지의 짧은 기간은 박근혜 외교의 부실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시기였다. 일관성도 설명력도,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무능 외교의 전시 기간이었다.
가장 뼈아픈 실책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해 섣불리 꺼내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이다. 이로 인해 3년간 시진핑 주석을 6번이나 만나고, 미·일의 반대 속에 중국의 전승절 행사까지 참석하면서 공을 들여온 중국과의 우호 관계는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는”(2월23일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 위험 관계로 전락했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맹반발에 ‘유엔 제재와 관계없는 순수한 안보적 차원의 결정’이란 논리를 폈지만, 미국과 중국이 유엔 제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흥정물이 된 흔적이 역력하다. 사드 배치 카드가 중국이 강한 제재안을 받아들이는 지렛대로 작용했을 수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도, 중국의 감정을 상할 대로 상하게 한 채 한국의 신세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로 만든 판단 실수는 엄중하다. 북한의 로켓 발사 전까지만 해도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고 공언했던 3불 정책을 로켓 발사 몇 시간 만에 ‘배치 결정’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잃게 된 대외 신뢰도는 어떻게 만회할 참인가.
개성공단 폐쇄는, 개성공단뿐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까지 대못질 했다. 박 정권이 개성공단 폐쇄 이유로 ‘임금의 일부가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을 내세운 만큼,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완전 중단하기 전까진 개성공단을 재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북한 체제 붕괴 정책을 상징하는 개성공단 폐쇄에 북한도 모든 연락 창구를 닫는 강경 조처로 맞대응하고 나서, 적어도 박 정권 기간 중 남북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도 사실상 소멸되었다. 하지만 박 정부의 이런 체제 붕괴 정책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장 새로 채택될 안보리 제재 결의 초안만 봐도 내용은 강해졌지만, 존 케리 미 국무장관조차 제재의 목적이 북한을 대화 무대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더구나 제재 이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은 연일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미국도 비핵화 논의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협상에 관심을 표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자칫 박 정부만 나 홀로 강경론 속에 고립되기 십상이다.
‘12·28 위안부 합의’는 시간이 갈수록 ‘일본의 만족-국내의 불만’ 현상이 두드러진다.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애초 해결 기준이 사라지고, 소녀상 철거와 10억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모욕적 내용이 돌출한 탓이다. 결과적으로 국민 차원에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하였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상대인 북한, 중국, 일본을 모두 적진으로 내몬 3대 실책의 주범은 청와대다.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지만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의 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실제, 사드는 김관진 안보실장, 개성공단은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위안부는 이병기 비서실장이 주도적으로 결정한 뒤 국방·통일·외교부에 실행 책임만 떠넘겼다고 한다. 국익 수호의 종합 사령탑이어야 할 청와대가 국해·국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어찌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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