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실장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3중의 혼돈과 위기에 빠져 있다. 기존 세계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 감퇴에서 오는 지구적 차원, 지역 정세의 변화를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데서 비롯된 지역 차원, 극도의 정치 분열에서 초래된 국내 차원의 혼돈과 위기가 그것이다. ‘시대 이름 짓기’의 명수인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이 지금 살아 있다면 2016년을 무슨 시대라고 불렀을까? 모르면 몰라도 ‘혼돈의 시대’라고 작명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냉전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요즘처럼 국제정치적으로 시계 제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절은 없었다. 지도를 펴놓고 오대양 육대주를 둘러봐도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을 찾기 어렵다. 기존 질서가 제대로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가 없다. 유럽 대륙은 브렉시트와 우크라이나 사태, 이민 문제와 테러로 비틀거리고, 미국은 트럼프 현상으로, 중동은 시리아 내전과 터키의 쿠데타 후폭풍으로 세계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멀리 남미의 브라질에선 리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혼란이 벌어지고, 한때 우고 차베스 열풍을 타고 좌파의 이상적인 모델로까지 추앙받던 베네수엘라에서는 먹고살기 위한 주민들의 주변국으로의 탈출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좌든 우든, 소국이든 대국이든 지구촌 전체가 혼돈, 혼선, 혼란의 와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시야를 좁혀 동아시아 지역을 보면 어떤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국가 미국과 신흥 도전국가 중국의 기싸움이 장난이 아니다. 여기에 이 지역의 주도권을 둘러싼 전통적인 라이벌 중국과 일본의 신경전까지 가세하면서 지역 정세를 더욱 유동화시키고 있다.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이들 나라 사이의 알력과 다툼으로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부터 남중국해의 난사, 시사군도에 이르기까지 태평양의 물결이 잠잠할 날이 없다.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국과 기존의 패권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의 경로로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길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동아시아의 이러한 세력 변화, 세력 전이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해 아무리 북핵과 미사일 도발을 염두에 둔 자위적, 방어적 조치이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없어진다고 설명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세력 균형을 흔드는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도전에 한국이 가담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드 문제를 전술적 대응으로 보는 한국과 전략적 행위로 바라보는 중·러 간의 이런 근본적인 인식 차이는 정상들이 한두번 얼굴을 맞댄다고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냉정하게 보면, 북한 핵 문제나 남북통일 문제는 동아시아 세력 구도 변동이라는 상위 구도 아래에서 움직이는 하위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 한국으로선 이런 문제가 제일의 과제일지 모르지만,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관점에서는 지역의 세력 변동 추이가 먼저이고 한반도 문제는 그다음일 뿐이다. 한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유엔에서 ‘역대급’의 대북 제재 결의를 이끌어내고도 사드 배치 한방으로 대북 압박 전선에 큰 구멍을 자초한 것은 이런 전략적인 구도를 간과하거나 무시한 탓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부터 시작한 러시아, 중국, 라오스 순방 기간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이 지역의 큰손을 두루 만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한 협조와 이해를 정력적으로 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보는 것처럼 세계와 지역을 바라보는 양쪽의 정세관 차이는 평행선이다. 낡은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3중의 혼돈과 위기에 빠져 있다. 빈부격차의 확대와 기존 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 감퇴에서 오는 지구적 차원, 지역 정세의 변화를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데서 비롯한 지역 차원, 우병우 민정수석 진퇴와 사드 배치를 놓고 벌어지는 극심한 정치 대립과 분열로 대표되는 국내 차원의 혼란과 위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말끔하고 정연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사정은 정의도 힘도 없어 보인다. 그것이 바로 지금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혼돈과 위기의 본질이다. 문제와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상대화, 객관화할 수 있는 혜안이 아쉽다. ohtak@hani.co.kr
칼럼 |
[오태규 칼럼] 혼돈의 시대, 길 잃은 한국 외교 |
논설위원실장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3중의 혼돈과 위기에 빠져 있다. 기존 세계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 감퇴에서 오는 지구적 차원, 지역 정세의 변화를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데서 비롯된 지역 차원, 극도의 정치 분열에서 초래된 국내 차원의 혼돈과 위기가 그것이다. ‘시대 이름 짓기’의 명수인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이 지금 살아 있다면 2016년을 무슨 시대라고 불렀을까? 모르면 몰라도 ‘혼돈의 시대’라고 작명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냉전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요즘처럼 국제정치적으로 시계 제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절은 없었다. 지도를 펴놓고 오대양 육대주를 둘러봐도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을 찾기 어렵다. 기존 질서가 제대로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가 없다. 유럽 대륙은 브렉시트와 우크라이나 사태, 이민 문제와 테러로 비틀거리고, 미국은 트럼프 현상으로, 중동은 시리아 내전과 터키의 쿠데타 후폭풍으로 세계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멀리 남미의 브라질에선 리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혼란이 벌어지고, 한때 우고 차베스 열풍을 타고 좌파의 이상적인 모델로까지 추앙받던 베네수엘라에서는 먹고살기 위한 주민들의 주변국으로의 탈출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좌든 우든, 소국이든 대국이든 지구촌 전체가 혼돈, 혼선, 혼란의 와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시야를 좁혀 동아시아 지역을 보면 어떤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국가 미국과 신흥 도전국가 중국의 기싸움이 장난이 아니다. 여기에 이 지역의 주도권을 둘러싼 전통적인 라이벌 중국과 일본의 신경전까지 가세하면서 지역 정세를 더욱 유동화시키고 있다.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이들 나라 사이의 알력과 다툼으로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부터 남중국해의 난사, 시사군도에 이르기까지 태평양의 물결이 잠잠할 날이 없다.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국과 기존의 패권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의 경로로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길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동아시아의 이러한 세력 변화, 세력 전이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해 아무리 북핵과 미사일 도발을 염두에 둔 자위적, 방어적 조치이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없어진다고 설명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세력 균형을 흔드는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도전에 한국이 가담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드 문제를 전술적 대응으로 보는 한국과 전략적 행위로 바라보는 중·러 간의 이런 근본적인 인식 차이는 정상들이 한두번 얼굴을 맞댄다고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냉정하게 보면, 북한 핵 문제나 남북통일 문제는 동아시아 세력 구도 변동이라는 상위 구도 아래에서 움직이는 하위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 한국으로선 이런 문제가 제일의 과제일지 모르지만,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관점에서는 지역의 세력 변동 추이가 먼저이고 한반도 문제는 그다음일 뿐이다. 한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유엔에서 ‘역대급’의 대북 제재 결의를 이끌어내고도 사드 배치 한방으로 대북 압박 전선에 큰 구멍을 자초한 것은 이런 전략적인 구도를 간과하거나 무시한 탓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부터 시작한 러시아, 중국, 라오스 순방 기간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이 지역의 큰손을 두루 만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한 협조와 이해를 정력적으로 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보는 것처럼 세계와 지역을 바라보는 양쪽의 정세관 차이는 평행선이다. 낡은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3중의 혼돈과 위기에 빠져 있다. 빈부격차의 확대와 기존 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 감퇴에서 오는 지구적 차원, 지역 정세의 변화를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데서 비롯한 지역 차원, 우병우 민정수석 진퇴와 사드 배치를 놓고 벌어지는 극심한 정치 대립과 분열로 대표되는 국내 차원의 혼란과 위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말끔하고 정연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사정은 정의도 힘도 없어 보인다. 그것이 바로 지금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혼돈과 위기의 본질이다. 문제와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상대화, 객관화할 수 있는 혜안이 아쉽다.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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