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실장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관련된 두 재단에 기업들이, 김영란법이 시행될 정도로 높은 투명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수백억원의 돈을 자발적으로 쾌척했다는 이 불가사의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이맘때쯤 이른바 ‘신정아 스캔들’이 정국을 강타했다. 30대 미혼의 잘나가던 여성 큐레이터로서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각광받던 신씨의 미국 예일대 학위 위조 문제에서 촉발된 이 사건은, 50대 후반의 기혼자인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급속히 권력형 비리로 비화했다. 이 사건을 이 시점에 다시 꺼내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요즘 화제 만발인 케이스포츠, 미르재단에 대한 재벌 기업들의 자금 출연에 대한 청와대와 전경련의 반응과 해명, 변명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다. 당시 권력 실세인 변 실장의 청탁을 받고 12개 기업과 은행 등이 8억5천만원을 신씨가 근무하던 성곡미술관에 후원했는데 이 중 상당 액수를 신씨가 착복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자금을 후원한 기업 관계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때 상당액의 후원금을 냈던 한 기업 관계자의 회고다. 그는 회사를 대표해 검찰에 나가 수사를 받았는데, 검사가 “변 실장의 청탁을 받은 회장의 지시로 돈을 낸 것 아니냐”고 묻길래 사전 연습해 둔 각본대로 “내가 신씨의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듣고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후원금을 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수사 검사가 “알았다”며 씽긋 웃더니 집에 돌아가 있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나온 뒤 자신의 설명이 잘 통했다고 판단하고 의기양양해 회장에게 보고했더니, 회장이 “잘했다. 검찰 수사를 버텨내다니 대단하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뒤 변 실장이 직접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변 실장이 검찰에서 자신이 기업 수뇌부한테 부탁해 후원금을 내도록 한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이 기업의 거짓 진술이 드러났고, 이 관계자는 회장을 대신해 다시 소환돼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그는 기업의 생리상 지금도 어느 기업이건 청와대 등 권력의 명확한 신호 없이, 수뇌부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수천만원 이상의 돈을 내는 곳은 없다고 확언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케이스포츠, 미르재단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돈을 냈다고 말하는데, ‘소도 웃을 일’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이 부회장이 양심을 걸고 끝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9년 전의 신정아 후원금도 그럴진대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관련된 두 재단에 기업들이, 김영란법이 시행될 정도로 높은 투명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신정아 후원금의 무려 100배 가까이 되는 돈을 자발적으로 쾌척한 이 불가사의를,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씨뿐 아니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관여한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청와대 대변인은 연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더니, 급기야 대통령은 아예 ‘비상시국에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비방·폭로 행위’라고 역공에 나섰다. 대통령 ‘심기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듯한 황교안 총리는 대통령 발언 이후 두 재단에 대한 의혹 제기를 ‘유언비어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겁박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전방위 방어망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가사의가 해명되지 않는 한 ‘벌거숭이 임금님’의 우화는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르, 케이스포츠재단 출연 미스터리 말고도 요즘 불가사의한 일들이 너무도 많다. 검찰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청와대가 이 특감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하자 갑자기 사표를 수리한 것은 무슨 꿍꿍이이며, 이 특감과 세트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직은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역시 불가사의의 백미는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전매특허인 비상시국 운운하며 그대로 눌러앉히겠다는 대통령의 아집과 독선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말마따나 지금이 안팎 양면의 비상시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한 것은 그 상당 부분이 대통령 자신으로부터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모른다는 점이다. 뻔뻔함과 ‘무지의 무지’가 무섭고 무서울 뿐이다. ohtak@hani.co.kr
칼럼 |
[오태규 칼럼] ‘청와대발 불가사의’의 연속 |
논설위원실장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관련된 두 재단에 기업들이, 김영란법이 시행될 정도로 높은 투명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수백억원의 돈을 자발적으로 쾌척했다는 이 불가사의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이맘때쯤 이른바 ‘신정아 스캔들’이 정국을 강타했다. 30대 미혼의 잘나가던 여성 큐레이터로서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각광받던 신씨의 미국 예일대 학위 위조 문제에서 촉발된 이 사건은, 50대 후반의 기혼자인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급속히 권력형 비리로 비화했다. 이 사건을 이 시점에 다시 꺼내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요즘 화제 만발인 케이스포츠, 미르재단에 대한 재벌 기업들의 자금 출연에 대한 청와대와 전경련의 반응과 해명, 변명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다. 당시 권력 실세인 변 실장의 청탁을 받고 12개 기업과 은행 등이 8억5천만원을 신씨가 근무하던 성곡미술관에 후원했는데 이 중 상당 액수를 신씨가 착복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자금을 후원한 기업 관계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때 상당액의 후원금을 냈던 한 기업 관계자의 회고다. 그는 회사를 대표해 검찰에 나가 수사를 받았는데, 검사가 “변 실장의 청탁을 받은 회장의 지시로 돈을 낸 것 아니냐”고 묻길래 사전 연습해 둔 각본대로 “내가 신씨의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듣고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후원금을 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수사 검사가 “알았다”며 씽긋 웃더니 집에 돌아가 있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나온 뒤 자신의 설명이 잘 통했다고 판단하고 의기양양해 회장에게 보고했더니, 회장이 “잘했다. 검찰 수사를 버텨내다니 대단하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뒤 변 실장이 직접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변 실장이 검찰에서 자신이 기업 수뇌부한테 부탁해 후원금을 내도록 한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이 기업의 거짓 진술이 드러났고, 이 관계자는 회장을 대신해 다시 소환돼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그는 기업의 생리상 지금도 어느 기업이건 청와대 등 권력의 명확한 신호 없이, 수뇌부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수천만원 이상의 돈을 내는 곳은 없다고 확언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케이스포츠, 미르재단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돈을 냈다고 말하는데, ‘소도 웃을 일’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이 부회장이 양심을 걸고 끝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9년 전의 신정아 후원금도 그럴진대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관련된 두 재단에 기업들이, 김영란법이 시행될 정도로 높은 투명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신정아 후원금의 무려 100배 가까이 되는 돈을 자발적으로 쾌척한 이 불가사의를,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씨뿐 아니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관여한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청와대 대변인은 연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더니, 급기야 대통령은 아예 ‘비상시국에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비방·폭로 행위’라고 역공에 나섰다. 대통령 ‘심기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듯한 황교안 총리는 대통령 발언 이후 두 재단에 대한 의혹 제기를 ‘유언비어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겁박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전방위 방어망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가사의가 해명되지 않는 한 ‘벌거숭이 임금님’의 우화는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르, 케이스포츠재단 출연 미스터리 말고도 요즘 불가사의한 일들이 너무도 많다. 검찰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청와대가 이 특감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하자 갑자기 사표를 수리한 것은 무슨 꿍꿍이이며, 이 특감과 세트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직은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역시 불가사의의 백미는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전매특허인 비상시국 운운하며 그대로 눌러앉히겠다는 대통령의 아집과 독선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말마따나 지금이 안팎 양면의 비상시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한 것은 그 상당 부분이 대통령 자신으로부터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모른다는 점이다. 뻔뻔함과 ‘무지의 무지’가 무섭고 무서울 뿐이다. ohtak@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