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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9 19:31 수정 : 2006.06.09 16:28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세계의창

지난 25일 일본 도쿄지법에서 한국인 군인·군무원 재판의 1심 판결이 선고됐다. 710호 법정에는 한국에서 온 이희자씨 등 원고 네 명과 지원자들이 있었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판결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재판관들은 망연해하는 원고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불과 5초 만에 나갔다고 한다.

청구는 전장에서의 사망이나 상해와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 전사자 유골 반환과 사망 상황의 설명, 징용 중 미불임금 지급, 시베리아에 억류되거나 비·시(B·C)급 전범으로 처벌된 데 대한 배상, 전사한 친족의 야스쿠니신사 합사의 철회 등 여러 면에 걸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재판에선 일본이 식민지배와 전시동원으로 한국인들에게 준 피해에 어디까지 대응할 것인지가 진지하게 추궁당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쿄지법의 판결은 이 물음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을 완전히 회피했다. 판결은 우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들어 유골 반환과 야스쿠니 합사 철회 이외의 모든 청구를 각하했다. 지금까지의 전후보상 재판에서 일본 사법부가 되풀이해온 논리다.

유골 반환 요구는 일본 정부가 유골을 보관·점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물리쳤다. 사실은 일본 정부가 게을리한 유골의 수집을 일부의 한·일 시민들이 해왔다. 따라서 사법부는 일본 정부가 동원·사망의 책임을 지고 유골을 수집·반환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야스쿠니 합사의 철회 부분은 야스쿠니 문제가 한-일의 큰 정치 현안인 만큼, 특히 주목받았다. 합사 철회를 요구한 원고는 414명 가운데 117명에 이른다. 유족들은 “우리에겐 전혀 알리지 않고, 우리의 의사에 반해 침략국의 종교(신도)에 따라 가해자와 함께 모셔져 민족적·종교적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일본 정부의 통지 철회와 합사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 청구도 기각했다. 통지는 전사자의 이름 등을 알려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원고에 대해 “강제나 구체적인 불이익을 준 것은 아니다”라는 게 판결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는 전후 후생성으로부터 전사자의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면 합사할 수 없었다. 최근 보도된 관계자의 증언 등을 보면, 후생성 담당국은 복귀한 옛군인들이 장악해, 합사 진행을 위해 열심히 전사자 통지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합사는 정부와 야스쿠니신사가 일체가 돼 한 행위임이 명백하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인 원고들에게 참기 어려운 굴욕을 줬다. 일방적·강제적으로 합사가 계속돼 이들이 한국 안에선 ‘대일협력자’의 유족으로 보이는 등 ‘강제나 구체적인 불이익’을 준 것도 사실이다. 재판관들은 한국인 유족의 고충을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간적 감정이 마비된 것일까?

야스쿠니 문제에선 총리의 참배나 에이(A)급 전범 합사만이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야스쿠니신사에 한반도 출신 약 2만1천명, 대만 출신을 합치면 5만명 가까운 옛 식민지 출신자가 모셔져 있다는 것 자체가 일본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대만은 물론 일본 출신 유족의 일부도 합사 철회 요구를 하지만, 신사 쪽이 거부하고 있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야스쿠니를 껴안고 있는 일본 사회가 식민주의로부터 정말로 탈피할 수 있을지의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합사 철회를 요구해온 이희자씨는 판결이 나온 날 밤 열린 보고집회에서, 분노를 억제하며 뜻을 함께하는 한국과 일본 시민의 연대로 두터운 야스쿠니의 벽을 깨뜨리고 싶다고 조용히 말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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