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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5 18:17 수정 : 2006.06.09 16:27

샐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세계의창

최근 강연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몇 개월 만에 한상렬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와 점심을 함께 했다. 그는 북한이 정교한 위조지폐를 세탁하기 위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이용했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충실하게 설명했다. 나는 그의 느긋한 태도에 놀랐다. 그는 마치 휴가를 즐기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6자 회담의 핵 협상에서 풀려난 이 휴가가 무한정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는 듯했다.

북한 외교관들에게(한국과 미국의 외교관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은 참으로 ‘휴가철’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9월의 베이징 협상을 낳았던, 열정적으로 태평양을 넘나들던 비행기도 없고, 10월과 11월처럼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선제적인 제안도 없다. 지금은 딕 체니 부통령과 그의 행정부 내 강경파 부하들이 미국 외교정책의 초점을 ‘금융제재를 통한 북한의 체제전환’으로 확고하게 전환시켰음이 명백하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은 시작에 불과하다. 재무부는 북한과 관련된 기금을 움직이는 전 세계 은행들에 그들의 대북 접근을 미국 금융망에 조화시키라고 경고하고 있다.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은 최근 <뉴스위크>와 회견에서 “북한에 금융제재을 가하는 것은 눈사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워싱턴은 북한 체제를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전략을 마침내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재무부는 같은 전략을 이란에 대해서도 구사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와 유비에스(UBS)라는 거대한 유럽계 두 은행이 지난 1월 이란과 거래를 중단했다. 고립된 이란은 고립된 북한보다 재정적으로 훨씬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이란의 지난해 수입·수출규모는 980억달러를 기록했고, 북한보다 훨씬 국제 금융체계에 밀착해 있다. 재무부가 이제 바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북한의 대외무역과 투자 능력을 깎아내림으로써, 김정일 체제에 의미심장한 긴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데이비드 생어는 지난 3월 “현재 미국의 전략은 북한을 쥐어짜면서 협상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평양은 그런 게임을 바라지 않고 있고, 부시 행정부의 변화를 기다릴 준비가 돼 있다. 생어는 2주일 전 부시 행정부는 6자 회담 재개와 병행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는 그에게 미국이 금융제재를 철회하지 않는 한 북한은 그런 제안에 우호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 주류들은 금융제재를 계속하면서 평양이 협상테이블에 돌아오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두 가지 노선을 병행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지난해 9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양자접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체니 부통령이 재무부의 금융제제를 동원해 9월19일의 공동선언에 즉각적인 태업을 벌이자 물러서고 말았다. 국무부 내의 체니 부통령 부하인 군축·국제 담당 로버트 조셉 차관은 전임자인 존 볼튼보다 더 강경파라고 할 수 있다. 조셉 차관이 확고한 역할을 맡은 정책회의에 참석한 국무부 관리들에 따르면, 그는 미국의 정책목표로 ‘평양의 전등을 끄는 방안’에 대해 말하곤 했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6자 회담과 병행해 시작하자는 구상은 좋은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금융제재를 막는 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밀어붙일 것이다. 이는 또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평양은 미국이 한국전쟁 때부터 가한 제재를 포함해 모든 제재를 제거하지 않는 한 점진적인 비핵화 과정에 의미있는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하고, 실질적인 에너지 지원을 제공하는 등 모든 제재를 종식하는 데 동의할 때에만 협상은 재개될 것이다. 평양은 두 개의 새로운 원자로 건설을 중단하고, 영변 원자로를 다시 동결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과 우라늄 생산을 중단하고, 적절한 사찰을 허용하는 등 포괄적인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선 미국과 한국의 정책이 더 의미있게 변해야 한다.


내가 저서 <코리아 엔드게임>에서 자세하게 주장했듯이, 북한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 제거될 때까지는 핵무기 선택권을 완벽하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모든 전술 핵무기를 제거했다고 주장하지만, 대륙간탄도탄(ICBM)과 핵탄두를 탑재한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함대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를 실은 항공모함을 태평양에 포진시키고 있다. 워싱턴은 한국과 태평양 함대에 핵무기를 재배치하고, 한반도 분쟁시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줄기차게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왔다. 1993년 6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직후, 당시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만났을 때, 북한은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 사용과 위협으로부터 북한에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원칙을 수락한 이후에야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유보하는 데 동의했다. 이 약속은 1994년 “미국은 미국의 핵무기 사용과 위협으로부터 (북한에) 공식적으로 안전보장을 제공한다”는 제네바합의로 강화됐다.

만약 제네바합의가 여전히 존재하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안전보장 제공에 동의한다면, 그런 보장은 한-미동맹에 함축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약속과 배치될 것이다.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남북한이 참여하는 6자 협정을 맺는 것이다. 주변 4개 나라가 핵무기와 화학·생물무기의 한반도 배치와 사용을 배제하고, 남북한이 핵무기 개발과 배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면 이런 협정 체결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촉구해야 한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필요하다면 미국의 동의가 없더라도) 등이 이런 결론에 이르도록 지지를 표명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는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승리가 될 것이다. 한국의 어떤 정부가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실질적으로 허용할 수 있겠는가?

샐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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