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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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지난 12월18일 김상봉 전남대 교수와 독일 베를린 한국연구교류센터의 최현덕 소장 등 한국 철학자 2명을 도쿄대로 초청해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경위는 이렇다. 3주 전인 11월28~29일 전남대 철학과 주최로 ‘상호문화 철학’(Intercultural Philosophy)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초청을 받았지만 같은 주에 서울과 파리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쿄대 ‘공생을 위한 국제철학교류센터’에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제안했다. 최현덕 소장은 ‘9·11 이후 정치적 문맥에서의 상호문화 철학’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9·11 이후 세계는 사람들을 ‘우리’와 ‘타자들’로 나누게 되고, 여기에 선악 이원론이 겹쳐져 ‘나쁜 타자들’을 적대시하고 배제·공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상호문화 철학은 이런 경향을 비판한다. 동시에 종래의 철학이 압도적으로 서양중심주의이며, 서양철학 이외의 사상·문화를 ‘열등한 타자’로 배제해온 데 대해서도 비판의 눈길을 보낸다. 어떤 문화 안에도 존재하는 ‘우리’ 중심주의를 스스로 반성하고, ‘타자’와의 대화를 부단히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공생’의 지평을 열어가려 한다.” 이런 내용의 발표였다. 김상봉 교수의 발표는 ‘응답으로서의 역사-5·18을 생각한다’였다. 김 교수는 1980년 광주 5월항쟁을 조선왕조→일본 식민지배→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유와 해방을 요구해온 한국 민중 역사의 정점에 자리매김했다. 거기서 나타난 사람들의 공동성을 철학적 관점에서 ‘절대적 서로주체성’으로 파악했다. 광주항쟁에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인 학생들, 사람들을 옮긴 택시 운전사들, 음식을 나른 시장 상인들, 헌혈을 한 성매매 여성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한 의사나 간호사 등 모두가 ‘객체’가 아니라 서로를 ‘주체’로서 일어서게 하는 운동이 전개됐다. 고통 받은 타자의 괴로움에 응답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집단이 ‘역사적 주체’가 된 매우 드문 운동이었다. 김 교수는 이런 해석에서 출발해 ‘수난의 역사철학’이라고도 부를 만한 것을 구상한다. “역사는 괴로운 절규를 통해 우리를 부른다. 고통이 없는 곳에는 역사도 없다. 역사의 고통에 응답할 수 있을 때에만 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소생해 이어져가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광주의 수난에 응답한다는 것은 광주항쟁의 우상화가 아니다. 그 경험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타자의 고통스런 요청에 자기를 열어가는 것이다. 김 교수의 발표는 모임에 참석한 도쿄대 연구자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특히 나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고발을 들은 뒤 호소와 응답의 논리로 ‘전후 책임론’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깊은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통역을 맡은 도쿄대 대학원 유학생 김항씨는 이전에 ‘광주의 기억과 국립묘지’라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거기서 제시한 ‘광주의 에티카(윤리)’에 대한 성찰을 지난 1일 함께 참가한 파리 제8대학 심포지엄에서도 발표해 주목받았다. 광주항쟁의 의미를 생각하는 철학적·사상적 탐구가 이런 형태로 ‘국제화’돼 가는 것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두 분과의 토론이 있던 날 일본 국회에서는 ‘개정’ 교육기본법이 통과됐다. 김 교수는 한국 학교의 도덕 교육을 ‘국가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며 새 교과서의 편찬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애국심 교육을 부활시키는 교육기본법 개악으로 일본에서 국가주의적 도덕 교육이 강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 우리는 생각이 일치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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