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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11 16:42 수정 : 2007.03.11 16:42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세계의 창

올해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 연설은 일본에서도 보도됐다. 이즈음 일본에서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3·1절 기념 재일 조선인 중앙대회’를 둘러싸고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집회는 3월3일 일본 히비야공원의 야외음악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도쿄도는 1월25일 장소 사용을 허가했다가 2월16일 갑자기 취소했다. 이유는 “일본인 납치사건이 있는데 북한과 관계가 깊은 총련에 (장소를) 빌려줘서는 안된다”는 우익단체의 항의 때문에, 반대자의 방해행위가 예상돼 참가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쿄지방재판소는 사용 취소 집행 정지를 요구한 총련의 제소를 인정해 28일 장소 사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도쿄도가 불복해 고등재판소에 항고했으나 고등재판소는 이를 기각했다.

대회장 사용이 허가된 것과 일본 사법부가 양식을 발휘한 것에 나는 우선 안심했다. 우익의 협박에 굴복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집회의 자유’를 부정하는 건 안 될 일이다.

도쿄도의 사용 취소 결정이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는지 생각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인 납치사건을 북한의 ‘국가 범죄’로 규탄한 나머지, 북한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모든 것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날로 강해졌다.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괴롭힘은 이전부터 사안이 있을 때마다 되풀이됐지만, 최근엔 일본 당국이나 경찰이 총련이나 재일 조선인들을 표적 삼아 별 것 아닌 문제로 많은 공안 직원을 동원해 체포와 가택 수색을 실시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경찰청 장관의 발언도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국책 수사’란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이사하라 신타로 지사가 이끄는 도쿄도의 경우, 에다가와 조선인학교에 대한 탄압을 벌였다. 도쿄 고토구 에다가와는 전쟁 전 쓰레기 소각장이었는데, 그곳에 재일 조선인이 강제 이주 당한 뒤 자력으로 민족학교를 운영해왔다. 전후 도쿄도는 이 지역의 관리를 일체 포기해왔다. 2003년 12월 도는 에다가와 조선인학교가 도유지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며 4억엔(약 32억8000만원)의 땅값 지급과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세계의 상식에 따라 민족교육권을 보장하기는커녕, 역사적 경위도 책임도 무시하고 이미 60명 이상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학교를 망치려는 것이다.

일본인 납치사건이 공개화한 이후 이른바 우익세력뿐 아니라 일본의 공권력 자체가 재일 조선인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하고 있다. 총련 주최의 ‘3·1절 기념집회’는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 항의하고, 만경봉호 입항 금지 등 일본 정부의 제재 조처 철회, 재일 조선인 인권 옹호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가운데 나온 도쿄도의 장소 사용 취소 결정은 그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압박 행위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법원은 이번에 기존의 흐름과 반대로 집회의 자유를 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장소 사용 취소’ 뉴스가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졌을 때, 전화와 팩스로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확산됐다는 점이 더 마음 든든했다. 앞서 말한 에다가와 조선인학교 문제도 학교를 지키려는 재일 조선인과 한국인에 협력하기 위해 일본인 변호사와 시민들이 열심히 활동했다. 도쿄지방재판소에서 8일 학교 쪽의 실질 승소라고 할 수 있는 화해가 성립돼, 학교 쪽이 1억7000만엔(약 13억9400만원)의 화해금을 지급하고 4천평 이상의 토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연대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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