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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3 18:13 수정 : 2007.05.13 18:13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세계의창

중국에서도 ‘알박기’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난 이 신조어는 개발업자와 협상이 실패해 이주를 거부하고 버티는 주민의 행태를 가리킨다. 그들의 집이 대못처럼 공사장에 박혀 공사 진행을 방해하는 탓에 ‘못집’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알박기는 흔히 이주 조건으로 한몫 챙기려는 이들의 욕심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개발업자들에게 모욕당하고 피해보는 백성들이다.

알박기는 중국의 거의 모든 공사장에서 나타난다. 또한 거의 모두 주민의 양보로 끝을 맺는다. 땅은 나라의 것이고 주민은 그저 사용권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업자들은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법을 들이대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다. 알박기는 권력과 돈을 모두 가진 개발업자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알박기에 나선 이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괴로움을 참고 힘겨움을 견디는 것이다.

그 무모한 버티기 싸움이 최근 전환점을 맞았다. 충칭에선 한 주민이 무려 3년 동안 알박기로 버텼다. 집 둘레에 큰 구덩이가 파이고, 물과 전기가 모두 끊긴 상태에서도 이주를 거부했다. 법원이 강제철거 명령까지 내렸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개발업자들은 360억원을 투자하고도 공사를 진행할 수 없어 파산할 지경이 됐다. 언론들은 이 주민을 ‘중국 최고의 쇠고집’이라고 불렀다.

충칭의 알박기는 무슨 힘으로 법원의 강제철거 명령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답은 바로 물권법이다. 법원에서 강제철거 명령을 내린 날은 공교롭게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사유재산 보호를 명시한 물권법이 통과된 때였다. 물권법은 10월부터 발효하지만, 이 법의 정신은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개발업자들도 이 역사적인 법을 어길 배짱이 없었던 것이다. 충칭의 알박기는 결국 정부의 중재로 막을 내렸다.

충칭의 알박기는 한 시대의 종결을 선언한다. 공민의 사유재산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시대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예전의 법률도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공언했지만, 헌법이 국가재산을 보호하는 것처럼 개인재산을 보호한다고는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양자가 모순될 때 개인재산은 국가재산에 양보를 해야 했다. 이 때문에 공사장에선 야만적인 철거가 빈발했다.

중국은 예로부터 국가이익을 강조하고 개인이익을 소홀히 했다. 나라의 일은 아무리 작아도 큰 일이고, 개인의 일은 아무리 커도 작은 일이었다. 나라가 생사존망의 위기에 놓였을 때 이렇게 나라와 개인의 이해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평화와 발전의 시기에 개인이 나라의 이익 앞에서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사실 충칭의 알박기는 일본의 알박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의 한 공항은 주민과의 협상이 실패하는 바람에 설계도를 수정하고 활주로를 옮기기까지 했다. 설사 물권법이 발효하더라도 이런 일이 중국에서도 일어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충칭의 알박기가 맞선 것은 상업적 목적의 개발업자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공사가 국책사업이었다면 3년 동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몇몇 한국인 친구들한테서 ‘10년 뒤 중국이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경제의 변화가 아주 클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점칠 수 있는 것이다. 예측하기 힘든 것은 정치의 변화다. 요즘 중국에서도 인권, 민주 같은 말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는 좋은 것이다>라는 책도 나왔다고 한다. 중국 정치가 현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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