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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21 18:20 수정 : 2007.10.21 18:20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세계의창

중국인들은 지난 추석에도 ‘월병’(달 모양의 떡이나 과자)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그러나 월병을 실제로 먹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월병을 받으면 대체로 먹지 않고,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돌렸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나, 건강을 생각해서였다. 월병은 맛은 있지만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아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다. 어찌 보면 월병을 선물하는 것은 상대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다.

이러니 월병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 유쾌할 리 없다. 월병을 받을 땐 기쁜 표정을 짓지만,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기에 재빨리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기 일쑤다. 월병의 대순환이 시작하는 것이다. 월병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달은 점점 둥그레져 보름달이 된다. 한가위가 되면 남을 해치는 일을 더는 하기 어렵다. 결국 남은 월병을 먹어 자기를 해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월병은 상점이나 수퍼마켓에 수북이 쌓여 있다. 팔리지 않았으니 누구도 해칠 수 없는 ‘착한 월병’이다. 추석날이 되면 곳곳에서 할인판매가 불붙는데, 그때 월병값은 만두값과 같다. 그래도 팔리지 않으면 눈물을 머금고 모두 거둬들여 돼지먹이로 만든다. 돼지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돼지를 해칠 수 있는 월병은 ‘진짜 월병’이다. 월병이 아닌 월병도 많다. 호화로운 포장지 안에 마오타이주나 우량예 같은 값비싼 술을 함께 넣은 월병은 판매가격이 몇 천 위안을 호가한다. 달이 둥근 밤에 월병을 먹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참으로 우아하지 않은가? 금으로 만든 나이프와 포크가 함께 들어 있는 월병도 있다. 월병을 멋지게 잘라 먹으라는데 뭐라 하겠는가? 어떤 월병은 아예 금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걸 금덩어리 장사라고 해야 하나, 월병 장사라고 해야 하나?

‘월병이 아닌 월병’을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부패 때문이다. 월병은 뇌물을 주고받는 도구로 쓰일 때가 많다. 과거 중국인들은 당이나 직장의 간부들에게 현금이나 예금통장을 바칠 때 과자상자나 월병상자에 숨기곤 했다. 드러내 놓고 뇌물을 주자니 부끄럽고, 상대방이 거절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간부들은 그렇게 받은 월병상자가 너무 많아 포장이 좋아 보이지 않으면 뜯어보지도 않고 내다버렸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선 한 청소부가 그렇게 버려진 월병상자를 주워 하룻밤에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오늘날 부패는 ‘풍속’으로 굳었다. 이제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돈봉투를 건넨 이 앞에서 액수를 세어보는 지경이 됐다. 덕분에 뇌물을 주고받는 수단으로서 월병의 효능은 줄어들었다. 월병은 이제 본디 그랬던 것처럼 ‘뇌물’이 아니라 ‘선물’에 가까워졌다. 월병상자에 현금이나 예금통장, 집문서를 넣어 보내는 것보다, 금으로 만든 월병을 건네는 게 그래도 월병의 본모습에 가깝다.

이제 월병은 우아함을 추구한다. 금으로 만든 월병을 속된 것으로 치부하고, 소박하고 예쁜 월병을 높이 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보도를 보니, 누군가 방금 만든 월병을 비행기에 실어 당의 지도자에게 보냈다고 한다. 지도자의 손에 오른 월병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고 한다. 선물하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야말로 포장은 가볍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무거운 월병이다.

다음 추석은 이렇게 되기를 꿈꾼다. 추석을 앞두고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표값이 폭등한다. 베이징 시내는 외지에서 올라온 차량으로 교통이 마비된다. 이 모두가 갓 만든 월병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빨리 전하려는 이들의 조바심 때문이었다나.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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