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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5 18:32 수정 : 2008.01.24 15:52

훙칭보/중국 월간 <당대> 편집 부국장

세계의창

‘한류’(韓流)라는 말은 1997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그때 <사랑이 뭐길래>라는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 전까지 중국 시청자들은 유럽이나 미국, 홍콩이나 대만의 드라마를 많이 봤다. <사랑이 뭐길래>가 대박을 터뜨리자 중국 시청자들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듯 한국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98년 한국 그룹 ‘에쵸티’(H.O.T.)가 중국 청소년들의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99년엔 베이징 도심 상업지구에 한국 상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대형 쇼핑센터가 문을 열었다. 2003년엔 현대자동차 베이징 합작공장이 생산을 시작해 단숨에 유럽과 미국, 일본의 자동차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05년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1억8천만 중국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는 다시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이런 현상은 음식대국임을 자부하는 중국에선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엔 한국 오락프로그램 <엑스맨>이 인터넷에서 내려받기 선풍을 일으켰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한류는 지난해부터 퇴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한류가 점차 ‘한류’(寒流)가 돼간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류의 선봉에 섰던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다. <대장금>이 방송된 2005년 중국에 들어온 한국 드라마는 64편이었으나, 2006년엔 36편, 2007년엔 30편으로 줄었다.

한국산 제품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이제 삼성과 엘지의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은 중국 소비자들이 남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 맨 처음 고려하는 게 아니다. 현대자동차 판매도 상승에서 하락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 주요 도시의 한국 상품 전문 쇼핑센터에는 찬바람이 분다.

한류는 앞서 중국에 들어온 유럽이나 미국류, 홍콩이나 대만류에 비해 성쇠가 빠르다. 이들 앞선 조류는 중국의 발전 과정과 함께 발전했다. 중국을 계몽하고, 중국인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다. 그럼으로써 ‘감성’에서 ‘이성’에 이르는 성숙의 과정을 밟았다. 이는 중국 사회에서 아래로부터 위로의 변혁을 추동했다. 대만 가수 덩리쥔(등려군)이 중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다 다시 인기를 끈 것을 보라.

그러나 한류가 들어온 97년 당시 중국은 이미 경제 발전의 기초를 다진 상태였다. 한류는 중국과 중국인이 따라 배워야 할 그 무엇이 아니었다. 다만 화려한 볼거리로서, 재미있는 오락으로서 날로 까다로워지는 중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았을 뿐이다. 더욱이 한류는 중국의 지식인 계층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한류는 애초부터 엽기적인 유행의 색채를 띠었다.

한류가 중국에서 식어가는 데 어떤 실수나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든 개방 초기엔 다른 나라의 문화와 경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과열을 빚곤 한다. 그러다 나라가 이성을 되찾고 성숙하면서 그 거품은 파열한다. 더욱이 모든 정부는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을 최선의 수비로 삼는다. 자국의 문화산업을 지원하며, 문화제품 수출을 격려한다. 외국의 조류는 형성되자마자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류의 퇴조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어떤 점에선, 중국에서 한류의 퇴조는 두 나라의 전면적인 교류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한류는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알게 했다. 한국의 정신적 자산과 문화적 우수함, 제품의 다양성 등 가치 있고 배워야 할 점들을 보게 했다. 이런 것들은 한류가 퇴조했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훙칭보/중국 월간 <당대>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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