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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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파키스탄의 아유브 칸 박사는 국제적 핵 밀매를 이유로 3년 전 체포된 이후 ‘접근 불가’ 상태다. 이는 북한 핵 협상에서 중대한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회고록 <사선에서>를 보면, 파키스탄의 핵개발 책임자였던 칸 박사는 우라늄 농축에 적합한 원심분리기 “거의 20기”를 북한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부인하면서 미국 쪽에 증거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김명길 공사는 최근 점심을 함께 드는 자리에서 “칸 박사를 협상에 불러오는 게 어떻겠소”라며 크게 웃었다. 2·13 합의 비판자들은 북한이 무기급 우라늄 농축 공장을 비밀리에 가동하고 있다는 2002년 중앙정보국 평가보고서를 들어 합의를 훼손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이 공장의 소재를 밝히고 해체하지 않는 한, 비핵화 합의는 의미가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에 맞서 미국 쪽 협상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그런 공장의 존재가 확실치 않다고 폭로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미국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사용될 수 있는 어떤 장비를, 특히 러시아에서 알루미늄관을 수입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기급 농축시설에 필요한 수천기의 다단계 원심분리기 캐스케이드를 만들자면 우리가 실제 구입했다고 알고 있는 것 이상의 훨씬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부인하지만,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면 의심받는 장비들이 다른 목적으로 수입됐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왜 무샤라프는 칸을 꽁꽁 숨겨놓으려고 하는 걸까? 파키스탄의 공식적 답변은 미국의 정보요원들에게 칸을 교차로 심문토록 하면 파키스탄의 주권이 모욕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칸은 국민적 영웅이고,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간 침공, 그리고 민간인 살상으로 파키스탄에서 증오의 대상이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샤라프가 협조하고자 한다면, 베나지르 부토가 제안한 대로 국제원자력기구에 칸을 심문토록 허용하거나, 파키스탄의 핵전문가가 칸을 자세하게 심문한 뒤 북한에 관한 정보를 미국에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무샤라프가 칸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는 데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무샤라프와 그의 동료 장군들이 칸과 협력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얘기다. 아니면, 문서상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샤라프가 과장했거나 부시 행정부의 비위를 맞추려 꾸며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무샤라프는 이 문제를 북한에 불리하게 몰고감으로써 알카에다·탈레반과의 싸움에서 신통찮은 성과를 낸 데 대한 미국의 불만을 상쇄하려는 기대를 가졌을 수 있다. 칸 박사가 체포된 직후인 2004년 2월10일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로드와 마미 월드먼 기자는 무샤라프가 인터뷰에서 “칸 박사가 파키스탄의 핵기술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맞교환하는 협정을 맺었다는 미국 정보관리들의 보고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설명이야 어떻든, 미국은 칸 박사 문제를 파키스탄과의 최상위 의제에 올려놓아야 한다. 적어도 국제원자력기구가 칸 박사가 북한뿐 아니라 이란과 시리아에 무엇을 넘겨주었는지 심문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틀림없이 연구개발(R&D) 목적으로 원심분리기를 확보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란처럼 북한도 핵확산금지조약에 따라 무기급 농축을 막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처를 받아들인다면, 민간 원자로에 사용할 저농축 우라늄의 제조가 허용돼야 한다. 이런 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핵무기가 해체됐을 때 전력생산을 위한 경수로 건설이 약속되지 않는다면, 북한은 보유한 플루토늄을 포기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려 하지 않을 것 같다.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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