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6 18:36
수정 : 2008.01.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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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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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2008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해의 첫 칼럼이지만 지난해에 이어 야스쿠니 신사 문제로 시작하는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히로히토 ‘천황’이 에이(A)급 전범 합사에 불쾌감을 품고 야스쿠니 참배를 중지한 것은, 그가 도쿄재판 결과에 감사했다는 데부터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야스쿠니는 천황의 명령으로, 그의 나라를 위해 전사자를 모셔 왔다. 그런 ‘천황의 신사’ 야스쿠니에 천황의 의사에 반해 전범을 합사하고 천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그의 참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모순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현 천황까지 포함해, 30년 이상 참배하지 않는 이상사태가 지속되지만, 야스쿠니로서는 에이급 전범을 분사해 이를 해소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야스쿠니 자신이 다른 ‘영령’과 마찬가지로 “일단 신으로 모신 것은 신도의 도의상 분사할 수는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에이급 전범 분사 요구나, 유족들의 합사 취하 요구에 대해서도 이런 논리로 거부해 왔다. 그런 만큼 이제와서 “천황폐하가 참배하길 바라기 때문에 에이급 전범은 제외합니다”라는 얘기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히로히토도 전후 1975년까지 30년 동안 여덟차례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자신의 명령 때문에 전사한 200만명 이상의 ‘영령’이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에 히로히토 자신이 천황으로서 참배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것이 패전 뒤에도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야스쿠니 신앙’이 남은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예컨대 천황이 도쿄재판에 회부돼 그 지위를 박탈당했다면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야스쿠니 신사처럼 한편으로 히로히토와 천황제를 근거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도쿄재판 부정론에 서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런 자기모순이 결코 야스쿠니 신사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할 터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해 도쿄재판 부정론에 의한 ‘제국 일본’의 역사 재평가를 지향하는 현대 일본 우파 세력이 안고 있는 모순이기도 하다. 일본의 우파에게 과거도 지금도 천황제야말로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최후의 의지처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의 국가 색깔을 나타내는 근간은 천황제”이며 “일본의 역사는 천황을 날실로 해서 직조된 장대한 주단”이라고 말했다. “전후의 일본 사회가 기본적으로 안정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행정부의 장과 다른 천황이라는 ‘미동도 하지 않는 존재’가 있어 가능한 게 아닐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아베 신조 저서 <아름다운 나라에>)
그러나 패전하고도 천황이 ‘미동도 하지 않은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쿄재판에서 천황 면책이라는 중대한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 에이급 전범으로 천황 기소라는 근대 천황제 최대의 위기가 더글러스 맥아더와 미국이 방패역할을 한 도쿄재판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무시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 일본 우파세력은 도쿄재판의 결과를 부정하려고 하면 히로히토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 된다. 또한 전후 천황제의 최대 의지처가 실은 미국이었다는 것을 무시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게 되는 것이다.
히로히토 천황은 도쿄재판에서 기소를 면해 1947년 5월 새로운 일본헌법의 시행과 함께 ‘일본국’과 ‘일본국민통치’의 ‘상징’이 된다. 천황은 정치권력을 일체 갖지 않는 것으로 됐다. 그러나 이때 히로히토는 헌법 규정에 반해 전후 일본의 새로운 ‘국체’라고 할 만한 것을 형성하는 데 한몫 하려고 했다.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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