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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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10년 전 대다수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위기로 흔들리고 있을 때, 미국은 건전한 금융구조와 기업지배구조의 모델로 거론되곤 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위기 국가들에 미국 모델과 비슷하게 경제를 재편하도록 대놓고 요구했다. 또 국제통화기금과 그 추종자들은 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내부자들만 이익을 보는 ‘패거리 자본주의’의 근절 필요성과 투명성의 미덕에 대해 훈계하곤 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이 투명성을 높이고 정실주의와 맞서 싸웠던 것은 옳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이제 동아시아가 아니라 월가에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씨티은행과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미국 금융시스템의 중추 기업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관련된 수백억달러의 부실채권 상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손실은 시스템 실패의 결과다. 이들 금융기관의 운영 책임자들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금융수단을 놓고 엄청난 도박을 했다. 그들은 모기지를 더 복잡한 금융수단으로 재포장해 다른 투자자들에게 다시 팔았다. 그들은 이런 재포장이 위험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재포장은 오로지 부채담보부증권(CDOs)과 주택담보부증권(CMOs), 구조화투자상품(SIVs) 등 월가의 금융 신상품들을 매입하기로 결정한 은행들과 투자자들에게 위험을 감추기 위해 이용됐다. 이번 사태엔 많은 ‘악당’이 등장한다. 우선 모기지를 발행해 수수료 이득을 챙긴 뒤 2차 시장에 팔아넘기는 모기지 발행자가 있다. 전통적인 은행들과는 달리 이들은 대출자들이 모기지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모기지의 계약조건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주택 구매자들에게 복잡한 모기지를 발행했다. 때로는 대출자들의 정보가 거짓인 줄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출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대출자들에게 거짓 금융정보를 기재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다음으론 증권화 전문회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금을 모기지와 함께 묶어 주택저당증권(MBS)이란 상품으로 판매했다. 이들 또한 모기지의 건전성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채권평가기관이 그 다음 구실을 맡았다.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졌다면 투자 부적격 등으로 판명됐을 주택저당증권과 다양한 파생증권들이 투자 적격 등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모기지 관련 채권들을 안전하게 생각했고, 전세계 시장에서 채권이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었다. 최고의 ‘문제아’는 미국 금융시스템을 감독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다. 거품이 발생하던 시기의 대부분 동안 의장을 지냈던 앨런 그린스펀은 시장이 통제에서 벗어나 요동치는데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린스펀이 잘못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그린스펀은 동료들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시장이 스스로 무너져 내릴 때까지 방치했다. 이번에 드러난 금융시스템과 감독체제의 실패로 미국이 떠안아야 할 비용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거품으로 8조달러까지 불어난 주택자산 가치는 2∼3년 안에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다. 현재 주택가격의 하락률은 연 11%인데, 1년에 2조2천억달러 이상을 허공으로 날려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실의 대부분은 주택 보유자들이 거주하는 미국에서 발생할 테지만, 월가는 교묘한 금융기술을 통해 위험의 상당 부분을 외국 투자자에게 떠넘기고 있다.한때 미국 금융시장을 높이 평가했던 외국 투자자들은 이제 그 상품들이 별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진정 위험을 원하는 투자자가 있다면 언제라도 이라크나 짐바브웨에 투자하면 된다. 굳이 월가에서 그 기회를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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