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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8 21:21 수정 : 2008.05.18 21:21

훙칭보 중국 월간 <당대> 편집 부국장

세계의창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개혁 개방이나 인구, 세계 경제의 호조 등을 중국 경제 발전의 원인으로 꼽으며 토론장을 달군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 발전을 위해 치른 대가는 대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1949년 건국 이래 중국 경제는 크게 두 가지 단계를 밟았다. 낙후한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의 변화가 그 첫 단계다. 이어 추진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그 다음 단계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그야말로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49년부터 78년까지 진행된 첫 단계는 농민들의 희생으로 이뤄졌다. 중국은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력 생산에 매달렸다. 전국 각지에 수력발전소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집과 땅을 잃었는지 모른다.

농민들은 공업화의 열매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은 날로 나아졌지만, 농민들의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오쩌둥 전 주석도 중국에 도시와 농촌, 노동자와 농민의 구별이 있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이런 차이는 아직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시작한 다음 단계는 다시 두 시기로 나뉜다. 백성이 부유하고 나라가 빈곤한 시기와,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이 빈곤한 시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물론 상대적인 의미이다.

2000년까지 이어진 첫 시기에 민간에선 전례 없는 부의 축적이 이뤄졌다. 당시 중국 경제 발전의 동력은 외국 자본과 민간기업이었고, 이로 인한 정부의 이익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재정이 부족한 정부가 필요한 지출을 제때 할 수 없어 민간에 차용증을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고민은 백성들의 예금이 증가하는데도 소비가 그만큼 늘지 않는 데 있었다. 정부는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1주일씩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이른바 ‘황금주’를 도입했다. 그런데도 사정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정부는 결국 부동산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덩샤오핑 전 주석이 이른바 ‘남순강화’를 할 때 상하이에 들러 관리들에게 이번이 개혁의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상하이가 이때 개혁 방안으로 제시한 게 부동산을 띄워 경제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물론,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 백성들이 무슨 돈으로 집을 살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관리들은 “시장이 가동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돈을 모두 끌어와 집을 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실제로 요즘 상하이의 집값은 중국에서 최고로 비싸다.

부동산값이 폭등하면서 중국은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은 가난한 나라가 됐다. 정부는 부동산에 높은 세금을 물려 곳간을 채웠다. 건축자재, 자동차, 가구 등 부동산 관련 산업이 발전하면서 역시 세수가 늘어났다. 정부가 민간에 차용증을 써주는 일은 사라졌다. 오히려 멀쩡한 건물이나 다리를 부수고 새로 짓는 재정 낭비가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이 됐다.

백성들은 이제 곳곳에서 신음을 내고 있다. 집값, 의료비, 교육비 등 이른바 ‘세 개의 산’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끊임없이 해결책을 마련한다고 하고 있지만,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집값 안정 대책은 8개나 되지만, 집값은 여전히 해마다 두자릿수로 치솟고 있다.

중국의 집값은 거대한 거품이다. 어느 경제학자는 “중국인들이 집을 사기 위해 50년을 가불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 수준인데, 집값으로만 보면 50년 뒤에나 가능한 3만달러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훙칭보 중국 월간 <당대>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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