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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6 22:29 수정 : 2008.07.06 22:29

훙칭보 중국 월간 <당대> 편집부국장

세계의창

2008년 5월12일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지진은 최근 30년 사이에 세계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1978년 7월26일 허베이성 탕산 대지진에 버금간다. 이런 피해는 전쟁도 아닌 평화 시엔 경험하기 아주 어려운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중국 정부와 인민은 많은 교훈을 얻었다. 30년 동안의 개혁개방을 거친 중국이 확실히 진보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는 일련의 경제 수치와 유형의 변화들만을 통해 얻은 결론이 아니다. 모든 이들이 단합해 구조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몸으로 체득한 발견이다.

중국 정부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구조에 나섰다. 이는 과거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78년 탕산 대지진 때, 정부는 재해 소식을 선택적으로 알렸다. 2003년 중국에서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발생했을 때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외국의 원조와 지원을 받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는 또 인명 구조를 무엇보다 우선시했다. 과거엔 사람과 함께 국가재산 보호가 중요했다. 그러나 지진이 발생하고 일주일 동안 모든 역량은 사람을 구하는 데 동원됐다. 이처럼 사람을 중심에 둔 것은 중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3일 동안 희생자들을 애도한 것은 중국 최초의 평민을 위한 의식이었다.

인민해방군은 인민의 군대로서 헌신했다. 재해가 발생하자 원자바오 총리는 막힌 길을 뚫고 피해 현장으로 달려갈 것을 인민해방군에 요구했다. “인민들이 당신들을 먹여살렸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헬기와 낙하산 부대가 재해지역으로 들어갔다. 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작전이었다.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재난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구조와 복구에 참여했다. 정부 통계를 보면, 전국에서 450억위안의 헌금이 걷혔다. 이는 중국인들이 이번 지진을 통해 전례 없이 단결했음을 상징한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의 금모으기에 감동을 받았는데, 이번에 중국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를 통해 도덕의 기준을 확인했다. 최근 몇 해 동안 중국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사회계층이 빠른 속도로 분화됐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도덕관이 갈라지고 심지어는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이 두루 존경을 받는다는 진리를 체험했다.

한 음료회사는 지진이 발발하자 흔쾌히 1억위안을 헌금했다. 사람들은 이 회사의 음료를 마시자는 운동을 일으켰다. 이처럼 한 기업의 정의로운 태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예전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에 이끌려 많은 기업과 부자들이 다시 헌금 대열에 섰다.


구조작업 현장에서 가장 사람들의 눈귀를 끈 것은 바로 중국 청년세대들의 활약이었다. 중국에선 80년과 90년 이후에 출생한 이들을 각각 바링허우(80후), 주링허우(90후)로 부른다. 중국이 부유해진 뒤 태어난 외동자식들인 이들은 이번 지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았다.

바링허우 작가 한한은 홀로 차를 몰아 재해지역에 구조 물자를 운반함으로써 독선적이고 반항적이라는 세인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이제 이들 젊은이들이 결코 이기적인 세대가 아니며, 다만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 내면의 공익심을 나타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여긴다.

지진은 중국인들에게 새롭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중국인들은 이를 통해 자신을 격상시켰다. 경제 발전이 가져온 많은 모순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은 새롭게 민족적 자신감을 얻었다. 하늘이 지진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내리면서, 중국인들에게 보상도 함께 내린 것이다.

훙칭보 중국 월간 <당대>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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