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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8 20:38 수정 : 2008.07.08 20:38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세계의창

일본에서는 지난 6월8일 일어난 ‘도리마(길거리 악마) 사건’의 충격이 아직도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그날 낮 도쿄 아키하바라 거리에서 20대 남자가 일요일 ‘보행자 천국’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트럭으로 돌진해 세 사람을 치어 죽였다. 운전하던 남자는 차에서 내려 약 100m 가량 달리면서 통행자와 경찰관을 칼로 차례차례 찔러서 모두 7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25살의 남자 가토 도모히로가 현행범으로 체포될 때까지 몇 분 사이의 참극이었다. 일본에서는 지난 3월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에서 24살 남자가 지나가는 사람 8명을 살상한 사건, 제이아르(JR) 오카야마역에서 18살 소년이 남자를 선로로 떠밀어 살해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범인들은 “살해 대상은 누구라도 좋았다”고 말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이번의 용의자도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키하바라에 왔다. 누구라도 좋았다”고 진술했다.

원한이나 증오를 느끼는 특정 상대에 대한 살의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적의를 강하게 느끼면서 그것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범행인 듯하다. 지금 일본 사회 안에서,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회 전체에 대한 이런 불만과 반감이 쌓여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된다.

“아키하바라에서 사람을 죽이겠습니다. 차로 들이받고 차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칼을 사용합니다. 모두 안녕”(5시21분), “시간이다. 나가겠다”(6시31분), “이것은 추한 비. 전부 완벽하게 준비했는데”(7시30분), “가나카와에 들어와 휴식. 지금 순조로운가”(9시48분), “아키하라에 도착했다. 오늘은 보행자 천국이죠?”(11시45분), “시간입니다”(12시10분). 용의자는 자신의 휴대전화 게시판에 이런 식의 글을 남겼다.

나 자신은 이 사건으로 휴대전화에 대해 더욱 꺼림칙하게 느낀 것이 있다. 현장에 우연히 같이 있었던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를 꺼내서 사건이나 피투성이가 된 피해자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려고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는 것이다. “지금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금방 멜을 보낼 테니까!” 이런 흥분한 목소리가 포착된 것 같다.(문예춘추 6월19일치)

눈앞에서 비극이 일어났는데 자신은 단순한 관객인 듯한 기분으로 오싹한 드라마를 즐기려고 하는 셈일까? 내가 이것을 보고 생각난 것은 1995년 도쿄에서 발생한 지하철 사린 사건이다. 컬트 종교집단 ‘옴진리교’ 신자들이 교주의 지시에 따라 5개의 지하철 차량 안에서 사린 독가스를 살포해 12명이 사망하고 5천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그 현장에 우연히 있었던 작가 헨미 요는 쓰러져 괴로워하는 피해자들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태연히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무리에 오싹함을 느꼈다고 한다. 사건은 아침 8시께 복잡한 통근 시간대에 일어났다.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들은 일상의 리듬이 흩어지는 것을 싫어해 근무처를 향해 걸음을 계속했을 것이다. 눈앞에 피해자가 쓰러져 신음하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히 무관심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계속하는 사람들. 그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카메라로 광경을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보내고 기뻐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은 사람들. 이곳을 철학자 아도르노가 목격했다면 “그것은 전부 시민사회가 안고 있는 냉혹함이다. 그 결말은 아우슈비츠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를 계기로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대중운동이 고양되면서 중·고교생이 휴대전화 메일로 참가를 호소하며 운동에 나서고 있다. 같은 휴대전화 메일이라도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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