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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3 21:48 수정 : 2008.08.03 21:48

저우창이 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세계의창

중국의 경제는 최근 30년 동안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중국의 도덕은 그 기간에 타락을 거듭했다. 경제와 도덕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간 것이다.

가장 먼저 타락한 것은 가장 먼저 개방의 바람을 탄 이른바 ‘개체호’라 불리는 개인사업자들이다. 이들은 나라 밖에서 몰래 들여온 물건을 팔아 뱃속을 채웠다. 서양의 쓰레기나 다름없는 청바지를 들여와 호기심 많은 동포들에게 팔아 떼돈을 벌었다.

농촌의 기업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세금을 훔치거나 빼돌려 부를 축적했다. 탈세와 누세로 다른 이들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사기를 쳤다. 그 다음엔 국영기업 사장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시장을 독차지하고, 국가의 재산을 날름 집어삼켰다.

이들의 도덕적 타락은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옛 선현이 말하지 않았던가. “교활하지 않은 상인은 없다.” 그러니 이들이 잇속을 좇아 도덕을 저버렸다고 해서 굳이 손가락질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타락한 것은 이른바 지식인과 학교와 병원이다. 그런데 이들의 타락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식인이란 모름지기 교육자이며, 학교는 무릇 영혼의 설계사다. 병원은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돕는 백의의 천사다. 이들은 모두 도덕의 모범이자 세상의 본보기여야 옳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던가. 마지막으로 타락열차에 올라탄 이들은 오랫동안 참았던 욕망을 폭발시켰다. 지금 도처에서 학교와 병원의 파렴치한 돈벌이에 대한 원성이 들끓는다.

게다가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관리들의 부패 추문은 참으로 인심이 예전처럼 순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언제나 아래로 흐르는 강물처럼 절망감이 깊어진다. 사회의 기풍은 점점 더 나빠지고, 병증은 점점 더 깊어진다.

이때 갑자기 쓰촨성 원촨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었다. 전국 도시의 모든 거리에서 헌혈을 하려는 이들이 줄을 섰다. 자선단체에는 사랑의 기부금이 쌓였다. 도로는 지진 현장으로 달려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차량으로 붐볐다.


그 순간 우리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마음속에선 동정심과 감동이 복받쳤다. 타락한 땅에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지 않는 인정과 고상한 인류애, 가없는 자비심의 열매가 열린 것이다. 우리는 인성의 강인함과 도덕의 강고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덕의 타락에 대한 절망은 천박한 것이었다. 도덕은 진실로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모든 직업은 한 번쯤은 돈의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런 충격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밑바닥까지 타락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마음속에선 선량함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타락했던 상인들이 가장 먼저 도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밀수와 사기로 일어선 부자들은 이제 자선가로 변신하고 있다. 폭력조직을 이끌었던 이들도 환골탈태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마지막 타락이 시작할 때 도덕의 재건 또한 시작됐던 것이다.

원촨 대지진은 10만명에 가까운 생명과 엄청난 재산을 앗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새로운 믿음을 얻었다. 자신과 국민, 나아가 인류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비록 타락한 이는 여전히 타락하고, 부패한 이는 아직도 부패하고 있지만, 대다수 중국인은 더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신이 착하고, 국민이 착하고, 인류가 착하다는 것을 알았다. 인성이 아무리 짙은 먹구름이라도 뚫고 반드시 빛을 내뿜는다는 것을 알았다. 원촨 대지진은 중화민족의 도덕을 재건하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저우창이 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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