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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0 21:57 수정 : 2008.08.10 21:57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세계의창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도 도리마(길거리 악마) 살인사건과 관련해 쓰겠다. 도쿄 아키하바라의 ‘보행자 천국’에 25살의 젊은이 가토 도모히로가 트럭을 몰고 진입해 4명을 치어 죽이고 3명을 나이프로 찔러 죽인 사건.

이 사건의 특이성은 누가 봐도 용서할 수 없는 흉악범죄이면서도 같은 세대 젊은이의 상당수가 “가토의 마음을 안다”는 등 용의자(범인)에게 ‘공감’을 표시하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흉악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의식이 확산(실제 통계상으로는 증가하고 있지 않다)돼 치안상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살인사건 용의자, 특히 젊은 사람에 대해서 미디어나 인터넷 등에서 맹렬한 비난 공세가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히려 가토에게 ‘공감’하는 젊은이가 많다.

왜 이럴까? 일본에서는 1980년대 후반의 거품(버블)경기가 붕괴된 이후 장기불황의 기업이 인건비를 억제하고 또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에 따라 고용 제도의 규제완화를 진행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일찍이 일본 사회는 종신고용과 사회보장 혜택 확대로 빈곤 문제가 해소되면서 ‘1억 총중류 사회’라는 자기 의식이 존재했지만 최근 10여년간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은 무너졌다.

오늘날은 정규 고용의 ‘승자’와 비정규직의 ‘패자’로 나뉘어 ‘패자’는 언제까지나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격차사회’로 변했다는 현실인식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취직 빙하기’에 일자리를 얻은 젊은이는 ‘잃어버린 세대’라고도 일컬어지는데, 그 상당수가 장래의 전망이 없는 프리터(프리+아르바이터 합성어), 파견노동자 등을 하며 날마다 고통스런 생활을 견디면서 울분을 껴안고 있다고 한다.

가토 도모히로는 바로 이런 젊은이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일본열도 최북단 아오모리현 출신인데 도쿄 파견회사에 등록돼 거기서 파견돼서 시즈오카현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건 직전에 공장에서 일방 해고될 것을 우려하고 자신이 비정규 노동자로서 기업의 형편에 따라 ‘쓰이고 버려지는’ 것에 깊은 반감을 느꼈다. 그가 사건 직전에 남긴 인터넷 게시판 글에는 격차사회의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젊은이의 불만이 기술돼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8년, 패배뿐인 인생’ ‘누구든 나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아 주소 없는 무직이 됐다. 점점 절망적이다’ ‘저래도 사람이 부족하니까 오라고 전화가 왔다. 내가 필요하니까가 아니라, 사람이 모자라니까 때문이다. 누가 갈까 보냐’ ‘승자는 모두 죽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바보 취급 당하니까 차로 치였으면 좋겠다’ 등등.

3월에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에서 거리를 지나는 8명을 살상한 도리마사건의 용의자도 가토와 같은 세대인 24살의 프리터였다. 그들은 아마 현재의 일본에서 ‘워킹 푸어’라고 하는 젊은이들과 어떤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감각이며, 사회적 인정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조차 박탈당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긍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를 긍정할 수 없는 감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리라. 트럭과 나이프로 7명을 살상한 남자에게 ‘공감’하고 ‘마음을 알겠다’는 젊은이들. 일본의 어른들은 이들 젊은이들을 ‘꺼림칙한’ 존재로 인식하고 ‘툭하면 화를 내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점점 불안감이 증폭하고 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을 그런 상황으로 내몬 것은 실은 자기 자신들인 어른들이다. 일본 사회가 진행해온 그동안의 노동정책이었다는 것을 이제 정말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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