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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2 19:42 수정 : 2008.08.22 19:42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세계의창

금강산에서 지난달 11일 박왕자씨가 피격당해 숨졌을 때 북한이 사과를 꺼린 점은 북한의 ‘공산당’ 정권이 사실은 군부독재 정권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분명한 증거다. 김정일 정권의 장군들은 어렵게 성취한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박씨를 쏜 초병과 인민군의 체면을 더 중시함을 분명히 드러냈다.

사실 북한은 지난 3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피격사건을 “유감스러운 사고”로 표현했고, 반복해서 “유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만약 한국이 합동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사과했을지도 모른다. 인민군 눈에 합동조사는 초병에게 징벌적인 조처로 연결되는 전단계처럼 비쳤을 테고, 이는 인민군이 받아들이기 힘든 모욕이었을 것이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민군에 대한 의존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노동당 원로 가운데 다수는 왕정시대와 같은 정권세습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다. 따라서,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의 사후, 당을 대신해 군대가 정치적 권위의 핵심이 되도록 하는 개헌을 강행했다. 김일성이 숨졌을 때, 북한에선 군의 무혈 쿠데타가 있었고 인민군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인민군이 김일성의 후계자로서 합법적인 지도자인 김정일을 필요로 하기에, 그는 명목상 지도자 위치를 지키고 있다.

김정일은 새 헌법을 채택한 1998년 9월 전에 이미 노동당의 군사위원회를 당 중앙위원회와 권력상 동등한 위치로 조용히 바꿨다. 이런 조직 개편은 북한 체제에서 국방위원회가 우위에 서도록 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동시에 노동당의 총비서를 맡게 됐다. 김일성이 차지했던 주석 자리는 폐기됐다.

당시 최고인민위원회는 영토에 관해, 명목상 최종 권한을 갖고 있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의전상 국가수반이었고, 다른 국가 정상들과 만날 때 북한을 대표했다. 그는 최고인민위 공식석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출 사실을 언급하면서, “(국방)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이 자리는 우리의 정치·군사·경제적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갖는 자리며, 공화국의 최고위 자리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1999년 6월,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두 공식기관은 합동성명서를 통해 “군대에 우선권을 주는 것은 현 시점에서 정치적으로 완벽한 방식이며 … 혁명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력을 창출할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의 혁명철학은 군대야말로 정확히 당·인민, 그리고 국가와 같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정일이 인민군과 노동당과 관련해 행사하는 권한의 정도는 외부인에게는 불분명하다. 그는 인민군에서는 대표자 이상의 권한을 갖지만, 그가 핵문제 또는 워싱턴이나 도쿄와의 관계에서 인민군의 핵심 권력집단들과 협력 없이 북한의 정책을 결정할 수 없다는 다양한 정황들이 포착된다.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적 감정은 특히 인민군 지도부 가운데서 강하다. 나는 김 위원장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에게 사과한 것을 두고 최고위 장군들 사이에서 비판이 나온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이 북한에 납치 문제와 관련해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수록 김 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납치문제에 대한 북한의 큰 양보가 없었음에도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는 백악관의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힐이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매파와 비핵화 과정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도쿄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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