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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8 21:13 수정 : 2008.11.18 21:13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세계의창

지난 6월 도쿄에서 도리마 살인사건을 저지른 가토 도모히로에 대해 “범죄는 엄청나지만 (범행을 저지른) 마음은 알겠다”고 하는 젊은이가 적지 않은 상황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지난해 어느 잡지에 ‘마루야마 마사오를 후려치고 싶다-31살 프리터. 희망은 전쟁’이라는 논문을 쓰고 <젊은이를 방치한 국가-나를 전쟁으로 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도 이런 주장을 한 아카기 도모히로에 대해서도 “극단적이긴 하지만, 심정은 이해하겠다”고 여기는 젊은이가 많았다.

아카기는 도치기현에 살고 있는 프리터(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리는 일본의 젊은이)로 그의 월수입은 10만엔 정도다. ‘취직 빙하기’에 사회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잃어버린 세대’의 한 명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현대 일본의 격차사회 안에서 비정규 고용 노동자로서 하루하루 굴욕적인 생각을 품고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가 죽으면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는 따라서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회 전체가 유동화해 정규 고용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무너지고 누구나 일단 제로지점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못가진 자’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쟁대망론’이, 명분이긴 하지만 ‘평화국가’를 지속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현대 일본에서, 특히 평화운동과 헌법운동을 떠맡아온 쪽으로부터 위험한 주장이라고 비판받게 되리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실제로 일본 좌파에 속하는 논자들은 일제히 아카기를 비판했다. “전쟁을 벌이게 되면, 전장의 맨 앞에 투입되는 것은 프리터의 젊은이다” “가난하다고 해도 목숨은 부지하고 있지 않으냐. 전쟁보다는 지금이 낫다” 등등.

아카기는 반론한다. “일본의 좌파가 비정규직 고용의 빈곤층 문제 등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전쟁이 일어나 죽는다고 해도 병사로서 죽는 쪽이 프리터로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 병사로서 죽으면 영령으로서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져 인간의 존엄을 인정받지만 이대로는 개죽음할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젊은이가 얼마나 절망적인 생활을 강요받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의 좌파는 이미 파탄상태이다” 등등.

아카기가 보기에 “헌법 9조(전쟁 포기)를 지켜라” 등을 내세우는 일본 좌파와 호헌파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노동자로서 노동조합 등에 의지하면서 자신들의 ‘평화적인’ 일상을 지키려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일 뿐이다. 그가 전후 민주주의의 오피니언 리더였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를 “후려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은 마루야마가 그런 평화운동·호헌세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가토 도모히로와 아카기 도모히로, 두 ‘도모히로’는 모두 ‘잃어버린 세대’에 속하는 젊은이이고, 자신을 ‘인간’으로서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절망에서 출발해 한쪽은 무차별 살인으로, 다른 한쪽은 전쟁대망론으로 귀착했다. 이것은 분명히 현대 일본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카기는 물론 가토와 달리 범죄 용의자는 아니고, ‘희망은 전쟁’이라는 주장은 진지한 것이긴 해도 호전적인 것은 아니다. 나도 그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평화는 일부, 즉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평화일 뿐이고 ‘모든 사람의 평화’는 아니며, 그런 ‘평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해한다면, 거기엔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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