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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9 19:38 수정 : 2008.12.19 19:38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세계의창

이번 6자 회담의 파탄은 예측이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로부터 더 좋은 타협을 끌어내고자 한다. 이제 문제는, 북한 비핵화, 북-미 관계 정상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남북 통일을 향한 과정을 다시 진전시키기 등 서로 맞물린 목표들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검증 우선’에만 집착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다. 북한이 비축했다고 신고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넘겨주도록 하는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북한이 테러 집단이나 제3자에게 팔아넘길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접근을 비판하는 이들은, 북한이 30.8㎏의 무기급 플루토늄만을 신고했으나 사실은 39㎏을 비축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이 핵탄두 1개를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숨겨두고 있다 해도, 탄두 소형화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가? 북한의 무기급 플루토늄 보유가 위험한 까닭은, 북한이 미래 어느 시점에 사용 가능한 핵무기 몇 개를 갖게 된다는 가상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당장의 경제적 절망 때문에 핵 암시장에서 핵분열 물질을 밀거래할 걱정 때문이다.

북한이 신고한 핵물질을 넘겨주도록 만드는 데서 진정한 문제는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에 지급키로 약속했지만 아직 인도되지 않은 중유 40%보다 더 많은 에너지 지원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사회기반시설 신용차관 지원 △민수용 경수로 2기 제공 합의 재확약 △저리·장기 상환 조건의 장기적 식량원조 확약 △주변국과의 공식 외교관계 수립 △평화협정 체결 등이다.

북한의 강경파는 미국·일본·한국이 아직도 ‘북한 정권 교체’ 꿈을 품고 있으며, 김정일 정권과 공존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의심한다.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의 합의사항들을 이명박 대통령이 ‘재검토’할 것이라는 청와대 보좌관들의 발언은 북한 쪽의 의심을 더욱 부추겼다.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으로부터의 압력을 상쇄할 수 있는 미국과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계, 파워게임의 균형에서 미국한테도 쓸모가 있는 관계”다. 북한 관리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필자에게 ‘미국이 심지어는 북한 영토에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정보기관을 둘 수도 있다’는 암시를 했던 것 같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겨냥한 남한의 지원자가 아니라 남북 사이의 공정한 중재자 구실만 한다면,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는 것에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정권교체에 대한 두려움에서 충분히 벗어났을 만큼 관계 정상화가 진전된 뒤라야만, 풀루토늄의 비밀 보관이나 우라늄 농축시설 등에 대한 정밀한 검증에 동의할 것이란 사실이다.

북한은 ‘검증 우선’에 동의한 적이 없고, 부시 행정부도 북한을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명확한 시기에 동의한 적이 없다. 이런 불명료함 때문에 ‘명단 삭제’와 ‘예비검증 의정서’를 교환하려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협상 노력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힐 차관보가 북한 협상 파트너들에게 속은 것인가? 필자는 다음달 평양을 방문해 이에 관한 북한 쪽 이야기를 들어볼 작정이다. 어떤 경우든,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바람직한 목표였으며 오래 전에 취해야 할 조처였다는 게 나의 시각이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는 북한 실용파들의 입지를 강화해 주고, 미국과 일본·한국 강경파들의 ‘발목잡기’ 압력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진지하고 실질적인 토대 위에서 협상을 재개할 희망을 살려놓고 있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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