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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06 21:03 수정 : 2009.01.07 00:35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세계의창

두 달 전 이 칼럼(11월18일치 ‘프리터 세대의 전쟁대망론’)에서, 양극화하는 일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빈곤과 배제로 고통받는 젊은층에게 아카기 도모히로라는 젊은이의 ‘전쟁이 희망’이라는 논의가 일정한 공감을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 동시 불황의 여파에 한국도 일본도 휩쓸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기업이 잇따라 인원 감축 방침을 밝히고 있다. 올봄까지 비정규 노동자 3만명을 해고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워킹 푸어’(일하는 빈곤층)의 곤경은 비정규 노동의 일자리마저 없는 실업자 급증 단계로 악화할 낌새다.

최근 젊은이들이 동세대의 노동과 생활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법인 주최의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내셔널리즘이 해답인가-승인과 폭력의 정치학’. 가야노 도시히토 쓰다주쿠대학 교수와 필자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가야노는 국가의 존재를 모호하게 다뤄온 포스트모던 사상을 비판하면서 국가의 본질을 ‘폭력의 운동’으로 부각시킨 저서 <국가는 무엇인가>로 주목받고 있는 정치철학자다. 토론의 들머리부터 그는 일본의 비판적 언론은 종래 내셔널리즘 비판이 기조였으나, 격차나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내셔널리즘의 긍정적 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화두를 던졌다.

나 역시 역사적 맥락을 제외한 채 ‘모든 내셔널리즘은 악’이라고 주장하는 비판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프랑스 혁명으로 성립된 근대 내셔널리즘은 신분제 사회를 해제하고 자유와 평등을 내걸었다.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에 대항하는 내셔널리즘은 차별과 예속으로부터 민족의 해방을 지향했다. 역사적으로 내셔널리즘이 해방적 의미를 갖는 국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런 내셔널리즘도 내부에서 소수민족이나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배타주의로 바뀌는 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가야노의 주장은 구체적이다. “아카기 도모히로와 같은 전쟁대망론, 빈곤 때문에 사회적 인정을 요구하며 우익으로 내달리는 젊은층의 존재를 보면, ‘일본인의 한 사람임’에서 의지처를 찾는 내셔널리즘의 효용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비정규 노동의 현장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외국인과 일자리를 다투지 않을 수 없게 된 일본 젊은이가 배외주의로 내달리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열린 나라’라는 명분을 버리고 국경을 어느 정도 닫는 게 좋지 않을까. 국내의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국민경제를 고수하고 국민간 평등을 실현해야 하므로 내셔널리즘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등등.

요컨대 격차와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우경화나 전쟁에서 구원을 찾는 길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내셔널리즘에 의한 국민간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주장이다. ‘국민’이라는 개념이나 법적 규정을 절대악으로 배척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주장에는 나도 동의할 수 있다.

다만, 가야노와 같은 내셔널리즘을 극우와 구별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민족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우익적 내셔널리즘과의 거리를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아카기는 “우익 사상에서는 국가와 민족, 성별, 출생 등 불변의 고유 ‘표시’에 의해서 사회 안에서 사람이 자리매김된다. … 예컨대 나라면 ‘31살의 일본인 남성’으로서 재일동포나 여성, 나이 어린 사람들보다도 존경받는 입장에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회로를 따라가면 ‘국민’의 내셔널리즘이 실제로 존재하는 차별들을 긍정하고 강화하는 것이 되리라는 우려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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