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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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지난해 11월20일 독일에서는 2차 대전 중 숨진 자국 장병들에 대한 애도의 날 행사가 열렸다. 나치 치하에서 ‘영웅 추모일’로 불렸던 이날은, 몇 해 전부터 나치 독재 시절의 모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기념일이 됐다. 베를린에 있는 중심 기념물은 유명한 사회주의 미술가 케테 콜비츠의 조각이다. 이 작품은 숨진 아들을 묻으며 비탄에 싸인 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독일 전역의 기념물들 대부분은 철모와 군복 차림으로 전사한 전우의 주검을 수습하는 강인한 남성상을 보여준다. 추모 대상은 항상 남성, 남편, 아버지, 형제, 아들이었다. 성폭행당하고, 살해되고, 정신적 상처를 받은 수백만의 딸들과 어머니들, 할머니들은 우리의 집단기억 속 어디쯤에 있는 걸까? 독일 하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는 룩셈부르크의 장클로드 융커 총리, 한스게르트 푀테링 유럽의회 의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연설했다. 융커 총리는 ‘기억의 문화’를 강조하며 “유럽은 전쟁의 대륙에서 평화의 대륙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푀테링 의장은 “우리 유럽인은 성취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은 세계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세 유럽연합 지도자의 연설 순서가 흥미롭다. 먼저 애도하고, 다음에는 자부심을 느끼고, 이어 전세계적 범위에서의 (평화 유지가 주축인 군사적) 개입을 위한 새로운 책임을 주장한다. 지난 수십년간 유럽의 역사가 평화로웠던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2차 대전 뒤 시작된 서유럽의 이른바 ‘평화적 통합’도 냉전시기 전략의 일부로 형성됐으며 독일한테 고통을 받았던 대다수 유럽인에게 강요되다시피 했던 점도 생각해야 한다. 유럽의 문명과 인권은 중앙아시아에서 지켜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결을 구실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정당화하는 것은 “유럽의 평화를 보장하려면 아프가니스탄의 평화가 확보돼야 한다”는 시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선전기관들은 아프간 남부에서 미군이 벌이는 전쟁과 유엔 국제안보지원군의 아프간 북부 배치를 구별하려 한다. 후자에는 독일 병력도 포함돼 있다. 독일은 공식적으로 토네이도 전투기 6대를 아프간에 파견했다. 이들의 임무는 사실상 전투 명령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안보지원과 전투 수행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이 증명하듯, 유럽의 군사전략과 에너지 공급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유와 천연가스 수송망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냉전 이후 독일 군대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보인다. 유럽이 전쟁과 관련 있는 현안들에 연루되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유럽을 위한 유일한 논증은 유럽 땅에서 실제로 전쟁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심리적 상흔이 깊게 남은 포스트-트라우마 사회에서 살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남긴 트라우마와 평화롭지 못했던 시간들은 잊혀지지 않고 있다. 모든 심각한 트라우마의 중심부에 남아 있는 뿌리 깊은 공포는, 결코 직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근원적인 트라우마는 가족이나 다른 사회조직들을 통해 2차 충격의 형태로 다음 세대들에 전달된다. 이런 악순환은 개인과 집단이 근원적 공포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정치 전략의 수단으로 오용되지만 추모일은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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