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3 18:07
수정 : 2009.01.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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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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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2009년 새해를 맞아 일본 언론은 국내 뉴스로 해고당한 비정규 노동자의 궁핍한 상황, 국외 뉴스로는 이스라엘군의 가자 공습을 집중 보도했다. 현재 일본의 노동자 3명 중 1명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의 불안과 궁핍함에 대해서는 이 칼럼에서도 몇 차례 다뤄왔다. 일본 언론도 이달 ‘해맞이 파견마을’을 일제히 보도했다. 지난해 가을 금융위기로 도요타, 닛산, 소니 등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파견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해 엄동설한에 노상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업자들에게 비영리법인(NPO)과 자원봉사자들이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했다. 이곳은 12월31일부터 1월5일까지 약 500여명 실직자들의 피난처로 이용됐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군이 공중 폭격과 지상 침공으로 압도적 무력을 과시하면서 가자 지구를 공격했다. 지금은 ‘잠정 휴전’ 상태이지만, 이미 팔레스타인에서 13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피해자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이 절반 가까이나 된다고 한다. 비인도적인 무기인 백린탄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의 임기 교체기를 틈탄 작전이라고 한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경우 유엔 결의를 아무리 무시해도, 또 어떤 비인도적인 군사력 행사를 해도 개입하기는커녕 이를 지지한다. 새로 출범한 오바마 정권의 면면을 봐도 미국의 이중자세가 쉽게 변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들 보도를 보면서 새해 벽두, 강자의 논리가 이 정도로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난 세계가 돼버렸다는 데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자본의 논리도 군사의 논리도 지금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20여년 전 동서 냉전의 종식이 선언된 시기에, 나 자신은 조금 밝은 미래를 전망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자유경쟁’에 대해 ‘평등’의 이념을 추구한 사회주의 실험이 좌절된 것은 유감스러운 것이었지만, 냉전 종식의 파도가 동아시아에도 미쳐 어떤 형태로든 ‘평화의 배당’이 세계에 퍼져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지금 나는 이 희망이 배반당했다는 것을 괴로운 마음으로 곱씹고 있다. 최근 20년은 실제로 ‘글로벌화’의 이름 아래 강자의 논리가 확대된 시기이며, 강자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약자가 가난하게 버림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시기였다.
‘새롭다’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자유’는 실제로는 예전부터 있어온 ‘강자의 자유’의 재판이나 다름없었다. 출발선을 어느 시점에 두든, 압도적인 불균형이 있는 초기 상태부터 ‘자유경쟁’을 방임한다면 그 자유가 ‘강자의 자유’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가을 이후 세계 경제 위기로 ‘신자유주의’의 기만성과 문제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지금이야말로 20세기 사회주의의 좌절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새삼 ‘평등’의 이념을 내걸고 주창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그 이념에 관한 재검토도 필수적이 될 것이다. 단순히 ‘국민’ 내부의 ‘평균’이나 ‘정의’로는 안 된다.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선 세계적인 ‘평등’과 ‘정의’의 추구가 필요하다. 과연 확실하게 평등으로 정의가 이뤄진 세계는 어떤 것인가. 우리들의 상상력은 아직 너무나 빈곤하다. 그런 세계는 마음먹었다고 해서 간단하게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 이념 없이는 인간 세계는 결국 약육강식의 정글로 떨어지고 만다. 평등과 정의가 없다면 평화도 없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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