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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5 20:43 수정 : 2009.02.25 20:43

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세계의창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에 이란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라늄 농축이나 헤즈볼라 및 하마스 지원 중단을 먼저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제스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새 대통령 취임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문제 같은 공통의 이해관계에서 일부 접점은 있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분명 관점과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다. 양국이 서로 가까워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이란 국민이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존중감이다.

미국-이란의 과거 역사는 그런 심리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20세기 중반, 이란에서는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민주적 선거로 총리에 당선됐다. 모사데크 총리는 취임 직후 석유산업의 국유화에 착수했다. 당시 이란 석유산업은 영국을 비롯한 서방이 경영권을 갖고 있었고, 이들은 이란에는 이익을 거의 배분하지 않은 채 막대한 이익을 가져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식민주의 분위기 속에서 미국은 잠시 모사데크 정부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내 미국이 정책을 바꾸도록 하는 데 성공했고, 미 중앙정보국(CIA)은 쿠데타를 벌여 모사데크 정부를 뒤엎고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는 샤를 복귀시켰다. 샤의 독재를 떠받친 가장 중요한 기구는 미국 중앙정보국과 이스라엘 모사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사바크라는 비밀경찰이었다. 이런 역사는 이란인들의 집단기억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이후 이란인들은 서방, 특히 미국이 이란의 선출된 정치인을 전복하고 쫓겨난 정치인을 복권시킬 만큼 자신들을 만만하게 여긴다고 느껴왔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30년 동안 많은 이란인이 겪어온 현저한 사회적·심리적 변화다. 샤의 왕정 독재를 무너뜨리고, 서방의 지원을 받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8년간 힘든 전쟁을 치르면서, 이란인들은 강한 자부심과 힘을 길러왔다. 그들이 서방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바라는 이유다. 특히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 참여하게 될 이란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느낄 게 분명하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 뒤 몇 개월 동안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란은 오는 6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미국이 이란인들의 역사적 기억과 심리에 주의한다면, 이란 유권자들은 미국의 위협을 덜 느끼면서 좀더 온건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도 있다.

현재 이란의 경제는 엉망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005년 포퓰리즘적 선전과 공약을 내걸고 집권했다. 그는 석유 수익을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계층에게 분배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약속을 이행했다. 석유 수익을 산업과 농업 성장에 투자하지 않는 대신, 직접 보조금과 저리 대출로 빈민층의 환심을 샀다. 이런 정책 덕에 일부 국민은 직접적인 구호를 받았지만 산업과 농업 기반은 위축됐다. 그 결과 실업률, 특히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청년층의 실업률이 25%를 넘어섰고 연간 인플레이션율도 30% 선을 맴돈다.

이런 경제난과 이란 국민의 경제개선 열망을 고려할 때, 오바마 정부는 이란과의 협상에서 경제개발 인센티브를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야만 한다. 특히 온건하고 민주적인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점을 고려하면, 이란 국민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경제개발 지원을 약속하는 두 가지 요소는 개혁적인 인물이 이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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