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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3 19:05 수정 : 2009.03.13 19:14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세계의창

1997년 여름, 동아시아 나라들에 ‘금융 쓰나미’가 덮쳤다. 타이와 인도네시아, 그다음엔 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투자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고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통화가치는 곤두박질쳤고 잘나가던 대기업들이 파산을 면하려 발버둥쳤다.

이 나라들을 성공적인 경제개발 모델로 추어올리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이코노미스트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투명성 결여, 회계기준 부실, 정실 자본주의 등 다양한 비난을 퍼부었다. 국제통화기금은 가혹한 조건을 내건 구제금융 계획을 들이밀었다. 힘든 내핍생활, 그리고 외국 투자자들이 헐값으로 기업 주식을 사들일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국제통화기금은 또 이들 국가에 외채 상환을 요구했다.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이 빚을 갚을 유일한 방법은 ‘미친 듯이’ 수출하는 것뿐이었다. 이들의 수출길은 자국의 통화가치, 특히 달러에 대한 통화가치의 폭락을 통해 열렸다. 그 결과 미국 소비자들에게 아주 싼 값이 되어버린 이들 나라의 상품이 미국 시장에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국제통화기금은 자율적인 기구가 아니다. 미국이 이 기구를 주도한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을 설계하는 데 가장 책임 있던 세 사람은 앨런 그린스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그리고 루빈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로런스 서머스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세계를 구하는 위원회’(이하 구세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 정도로 이 세 사람은 동아시아 및 다른 지역의 구제금융안을 디자인하는 데 너무나 두드러진 인물들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의 동아시아 구제금융은 나머지 세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신흥개발국들이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 구원’으로부터 뽑아낸 메시지는, 절대로 이 기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한 가지 방법은 외환보유고를 크게 늘리는 것이었고, 그 유일한 방도는 무역수지를 흑자로 운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미친 듯이’ 수출하는 나라가 동아시아 나라들뿐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모든 개발도상국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7년 이후엔 엄청난 자금이 신흥국들에서 미국 등 경제부국으로 흘러들었다.

이런 자본유입은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을 키웠다. 상품 수입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노동시장이 취약해졌다. 연준은 계속 금리를 낮췄고, 2003년 여름에는 금리가 1.0%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금리가 거품을 유지시켰다. 거품은 수년간 지속된 과잉과 노골적인 기만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 집값이 연간 10% 이상 오르고 부동산과 은행 부문에서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세계에서는 많은 죄악이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거품은 터지기 마련이다. 주택 거품의 붕괴는 주택 부문에서만 8조달러를 날려버리고 초대형 금융기관들을 파산시킬 것이다.


역사에서, 두 번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구세위’가 다른 길을 갔더라면 지금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물음을 던져볼 가치는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에 그처럼 목매달지 않도록 국제통화기금이 동아시아 나라들의 채무의 상당액을 탕감해 주도록 했다고 가정해 보라.

나아가, 구제금융의 부담이 가벼웠더라면 신흥개발국들이 외환 비축에 달려드는 사태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세위가 이처럼 다른 경로를 택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루빈의 씨티그룹 주식 지분(루빈은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를 지냈다)의 가치가 오늘날보다는 훨씬 컸을 것 같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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