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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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최근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해 다르푸르 학살을 비롯한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에 대한 기소 방침은 국제사회에서 격렬한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알바시르의 수단 정부는 2003년 이래 다르푸르에서 20만명이 목숨을 잃고 최소 250만명을 강제이주시킨 유혈사태에 개입해왔다. 수단 정부는 잔자위드라는 아랍계 민병대를 동원해 다르푸르 반정부 시위를 지지했던 비이슬람교도 주민들을 온갖 야만적인 방법으로 공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검사는 지난해 <에이피>(AP) 통신에 “인종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70살 노인에서 여섯 살 아이까지 가족이 보는 앞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결국 수단 대통령을 2건의 전쟁범죄와 5건의 반인도주의적 범죄 혐의로 고발했다. 수단 정부는 이를 부인한다. 이런 공방은 전세계에서 커다란 논쟁을 낳았고, 서방의 고소는 편견에 바탕한 인종주의적 태도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미겔 데스코토 브로크만 유엔총회 의장은 서방, 특히 미국이 알바시르를 고발하는 데에 인종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국제형사제판소가 알바시르를 기소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거의 없다. 다르푸르에서의 잔학행위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고발이 인종주의적인 것은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적용된 법이 이중 잣대라는 점이다. 서방은 과거 식민통치 시절은 물론이고 최근 수십년 동안에도 갈색 또는 검은 피부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 때문에 기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라크의 예를 들어보자.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최소 10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집을 잃은 난민은 이보다 훨씬 많다. 수단보다 훨씬 큰 규모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벌어진 인종학살에 버금가는 대량 인명살상과 피해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 같은 국제기구가 책임 있는 조사를 하려 시도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상당부분 역대 미국 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 등 국제기구의 창설과 활동을 반대하고 방해했기 때문이다. 1998년 7월 국제형사재판소 창설을 규정한 로마조약을 120개국이 비준했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이란·이라크·이스라엘·리비아·카타르·예멘 정부 등과 함께 이를 거부했다. 국제형사재판소 창설이란 결실을 낸 로마회의에서 대다수 국가들은 이 재판소가 궁극적이고 국제적인 사법권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은 이런 구상에 반대하고 비준도 하지 않은 나라다. 그 결과 국제형사재판소의 사법권 관할은 피고발자의 국적이 조약 비준국이거나, 범죄행위가 조약 비준국의 영토 내에서 일어나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피고발인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는 경우로 한정됐다. 게다가 미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유엔 주재 대사를 지낸 존 볼턴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이유로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가 미국 주권에 비춰 수용할 수 없는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재판소는 주권, 권력의 견제와 균형, 국가의 독립에 관한 미국의 기본적 견해와 배치되는 기구다. 미국의 국익과 해외 활동에 해롭다는 게 우리의 일치된 견해다.” 이 발언은 뻔뻔하게도, 미국의 지도자들이 그들 임의로 정의한 이익에 맞춰 멋대로 행동하고도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제 서방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국제기구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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