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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17 19:15 수정 : 2009.07.17 19:15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안니카는 일요일을 혐오했다. 일요일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평일의 틀에 박힌 일상에 여유를 주는 것은 도무지 친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스웨덴 작가 리사 마르클룬드의 소설 <패러다이스>의 한 대목이다. 당신도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평일의 틀에 박힌 일상이 단지 ‘여유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걸 인식했는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는 근원적 공포가 깔려 있는가?

국제적인 비정부 미래연구기관인 로마클럽이 1972년 <성장의 한계>라는 유명한 보고서를 내놓은 이후로 ‘제로 성장’ 같은 용어들이 공적 담론의 영역으로 들어왔으며, 지구의 유한성이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구 온난화도 핵심 논제가 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두려움이 일반화되는 분위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합리적 공포를 억제하는 하나의 수단이 정부와 국제기구들의 과잉행동이다. 오늘날에는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일자리, 그리고 생산물 분배 과정에서 더욱 많은 국가 권력이 작동한다. 석유, 가스, 핵에너지 등 자원 접근로를 확보하기 위한 게임에 전쟁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머잖아 생산과 낭비를 늘리고 지구 환경과 인류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공포는 더욱 커진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견딜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치료제를 찾는다. 우리는 술과 담배가 주는 이완 효과를 알고 있다. 진정제, 항우울제, 아드레날린 제제, 심지어 환각제까지 효용이 다른 약품들도 널려 있다.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 시청과 같은 다른 소비 수단을 사용하고, 또다른 이들은 인터넷에 빠지기도 한다. 진짜 감정을 향한 통로가 차단되는 대신, 대리감정을 제공받는다.

통계에 따르면 ‘중독성 기질’이 확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중독들은 견딜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한 반응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약물 흡입을 통해서든, 자기 몸으로부터 약물 효과의 생성을 자극하는 방식을 통해서든 간에, 그 같은 반응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조작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중독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근대성’을 ‘중독성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대중들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자아냄으로써, 중독성 행동에 대한 항구적인 초과수요를 창출함과 동시에 그것을 충족시킬 수단을 제공한다.

자본주의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내부 시장’이 필수적이 된다. 그때가 바로 중독성 구매와 소비가 일반화되는 시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작동 논리와 직결된 중독이다. 그중에서도 더욱 교묘한 것이 ‘일중독’이다. 이것은 단지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에 대한 점진적이고 병적인 집착이다. 이런 집착은 현실의 고통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거의 모든 사회기구들은 사람들에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취에 대한 보상을 주며, 그럼으로써 성취욕구를 더욱 강화한다. 중독을 ‘정당화’하기는 쉽다. 당신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보수가 필요하다. 프리랜서나 그와 비슷한 종류의 일처럼 스스로 작업을 관리할 여지가 있는 모든 직업은 특히 중독성 행동을 낳기에 딱 알맞다. 일중독은 여가 활동을 효율성 원칙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여가 시간까지 잠식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현대사회는 ‘일중독’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우리가 공포를 억제할 인위적 수단을 찾아 헤매는 것을 멈추고 이 끔찍한 현실에 감연히 맞설 때라야, 우리는 약물중독은 물론 소비와 일중독을 고착화하는 체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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