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26 21:04
수정 : 2009.07.2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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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 해리슨 미국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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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6일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미 동맹 미래비전’ 성명안을 준비했던 워싱턴 백악관의 관리들은 “한-미는 동맹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에 이르도록 함으로써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확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구절은 의례적인 수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용어는 (북한 처지에서 보자면) 직접적인 공격이다. 지난 2000년, 2007년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는 형태의 통일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 선언문은 이를 번복했다. 북한으로선 한·미 정부의 목표가 다시 ‘흡수통일’로 돌아갔다고 이해하게 된다. 북한의 정부 기관지인 <통일신보>가 한-미 정상회담을 신랄하게 공격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국무부 한국 관계자에게 (북한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태도 변화가) 미국 정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물었다.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인 데니스 맥도너는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오기 전에 한국 관련 경험이 전혀 없었다.
여기에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큰 실수를 했다. 이전의 남북 정상회담 내용을 재검토하겠다고 가볍게 발표한 것이다. 이런 번복은 북한의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고,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긴장완화를 흔들리게 만든다. 지난 1월 김용태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리는 15~2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북한으로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남이 북을 점령한다는 것을 뜻한다. 남한 인구는 2009년 현재 4830만명이고, 북한 인구는 2340만명이다. 만일 통일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선거가 열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일방안인 ‘국가연합제’의 기본 전제는 남북이 똑같은 대표권을 갖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성장시켜 두 체제가 가까워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1989년 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이 국회에서 제안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사실상 김 전 대통령 방안의 모태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동일한 대표권을 기본으로 했다. 남북 총리를 공동의장으로 하는 각각 10명의 각료급 위원으로 구성되는 ‘남북 각료회의’, 그리고 동일한 수로 구성되는 남북 의원 100명의 통일의회 등이 그 내용이다.
그런데 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한·미 강경파들의 힘을 북돋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95년 8·15 선언에서 “통일한국은 ‘또다른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말해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94년 북-미 핵협상과 관련해 그해 10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너무 많이 양보했다”며 “북한 체제는 현재 정치·경제적 위기 국면이다. 그런데 미국의 핵협상이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워싱턴 타임스>의 빌 거츠 기자는 <배신>이라는 책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내 북한의 붕괴를 기대했다”며 “김 대통령은 북한의 붕괴를 조장하는 은밀한 행동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남한은 김영삼과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냉전의 부활과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을 원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선언을 승인해야 한다. 그리고 흡수통일의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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