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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04 20:06 수정 : 2009.09.04 20:06

저우창이 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처음 우루무치에서 사건이 벌어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와 베이징의 동료들은 모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해 티베트 라싸 사건과 같이 누군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약탈과 방화에 나섰는데, 정부의 대처가 늦어 국면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여겼다.

우루무치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서야, 사건의 끔찍함이 9·11 테러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무리를 이룬 위구르족 남자들이 거리에 나서 한족만 보면 죽였다. 그런 장면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정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는 200명 미만이다. 그러나 우루무치의 각계 친구들은 모두 500~600명으로 추산한다.

만약 정부가 고의로 사망자 수를 줄여 말했다면 주도면밀하게 고려한 것이다. 한족의 민족적 원한을 일으키게 될까봐 우려한 것이다. 9·11 테러가 일어난 뒤 미국 정부는 미국인들의 원한을 이용해 아프가니스탄에 출병하고 이라크를 점령하기까지 했다. 우루무치의 폭동도 한족 만명 이상이 거리에 나서 시위를 하면서, 많은 이들이 방망이를 들고 보복살인에 나서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위구르족만 보면 죽인다면 신장은 정말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만약 조직도 없는 민족끼리 보복살인이 벌어진다면, 위구르족 동포와 한족 동포는 무조건 서로를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우루무치에 있는 작가 친구는 나에게 슬프게 “신장의 민족단결은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부는 군경을 출동시켜 한족의 시위를 과감히 ‘진압’했다. 이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다. 흑백문제를 경험한 미국인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민족충돌이 벌어지면 중국 정부는 한족을 감싸지 않고 엄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백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다쳤으며 참혹한 고통을 당한 직계가족도 수십만명이나 된다. 그 원한은 어떻게 ‘진압’할 수 있는가? 그래서 정부는 이전의 일관된 위구르족 위로 외에 중요 임무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한족을 위로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국 언론에는 개방했고, 국내 언론은 엄격히 단속했다. 사건을 거론할 때 위구르족과 한족 같은 용어도 금지했다. 모두 ‘폭도’가 ‘무고한 군중’을 살해했다는 통일된 용어를 사용했다. 동시에 위구르족 군중이 위험을 무릅쓰고 한족을 보호한 행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위구르족과 한족이 한가족처럼 단결해 신장에 화합과 번영을 가져온 것을 선전했다.

정부는 매우 신속하게 사상자 위로 방안을 발표했다. 사망자는 20만위안(약 360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는 중국에서 최근 몇년 동안 익숙해진 숫자다. 탄광사고 노동자 등의 사망 배상금이 20만위안이다. 하지만 그건 탄광 주인이 지불한다. 정부가 공공사건의 사상자들에게 위자료를 준 것은 내 기억으론 처음이다. 하지만 피해 한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정부는 자선기금회 명의로 20만위안을 더하고, 장례비 1만위안을 합쳐 모두 41만위안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위자료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광둥성 둥관에서 벌어진 위구르족과 한족의 충돌 사건에서 숨진 위구르족 노동자 2명에게 70만위안씩의 위자료를 지급한 사실을 떠올리며 반발 정서가 표출된 것이다.

이 모든 일을 서방 언론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간단한 공식을 믿기 때문이다. 즉, 일당 집권은 독재와 마찬가지이고, 독재 아래에서 벌어진 모든 군중사건은 반독재와 같다는 것이다.

저우창이 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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