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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3 21:41 수정 : 2009.09.13 21:41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생명윤리학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1988년 팬암기 폭파 테러범으로 알려진 압델 바세트 알메그라히를 석방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스는 잔혹한 투견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스타 쿼터백인 마이클 빅을 재영입했다. 또 1968년 베트남전 당시 수백명의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던 미군 중대의 전 지휘관인 윌리엄 캘리가 오랜 침묵을 깨고 공개사죄했다.

우리는 비행 범죄자들을 언제 용서해야 하는가? 많은 사회가 동물학대 범죄를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지만, 마이클 빅의 23개월 수감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는 참회의 뜻을 밝힌 데서 나아가, 동물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투견에 반대하는 민간단체에서 일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실천으로 옮겼다.

알메그라히는 270명의 목숨을 앗아간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겨우 7년 복역하던 중,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단을 근거로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석방됐다. 알메그라히는 자신의 유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참회한 적도 없고 석방 직전까지도 항소 중이었다. 알메그라히가 실제 죽음에 임박했는지도 의문이다. 그의 석방이 영국의 리비아 석유 개발권을 둘러싼 협상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도 무성하다. 일부에서 그가 진짜 범인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석방 결정에 일정한 구실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들은 일단 제쳐두자. 알메그라히가 유죄이고 그의 생명이 얼마 안 남아서 풀려났다고 가정하더라도, 죄수의 말기암이 동정심에 따른 석방을 정당화하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범죄의 성격, 선고 형량, 잔여 형기 등에 달려 있을 터이다. 2년 형기의 절반을 복역한 소매치기의 경우, 옥사를 감수하면서까지 잔여 형기를 채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대량살상으로 종신형을 받은 복역수를 7년 만에 석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팬암기 폭파 희생자의 유족들은 어떠한 동정심도 보이지 않은 알메그라히에게 왜 동정심을 보여야 하느냐고 묻는다.

케니 매카스킬 스코틀랜드 법무장관은 알메그라히 석방 결정을 해명하는 의회 설명에서, 자비심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영어 구절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자제했다. 재판관으로 변장한 여주인공 포샤는 샤일록이 계약을 위반한 안토니오에게 자비심을 보여줄 의무가 없다며, “자비심은 본질상 강요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비처럼 자유롭게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매카스킬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최상의 가치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만일 알메그라히가 충분히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윌리엄 캘리의 사례는 어떻게 다뤄야 하나? 1971년 캘리는 최소 22명의 베트남 양민을 학살한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판결 사흘(!) 만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그의 석방을 명령하고, 캘리가 침실 2개짜리 집에서 한 명의 여자 동료와 한 명의 보좌관과 함께 살도록 허용했다. 3년 뒤에는 형식적 구금조차 해제됐다.

캘리의 지휘관인 어니스트 메디나 대위는 마을을 불태우고 우물을 오염시키라고 명령했지만, 그것이 비무장 민간인 살해까지 포함한 지시라는 확증은 없다. 설사 그런 명령이 있었더라도 이행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캘리는 66살에 이르러서야 “그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베트남에서 학살된 양민들의 유족이 ‘로커비 테러’로 숨진 피해자들의 유족보다도 더 가해자를 용서할 준비가 돼 있는 건 아닐까.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생명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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