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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8 21:38 수정 : 2009.09.18 21:38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중고차 보상 제도는 낡은 차들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서유럽과 미국에선 엄청난 금액의 유로, 파운드, 달러가 지급되고 있다. 예컨대 영국에선 중고차 보상제 시행 2주 만에, 대당 2000파운드의 보상금을 타기 위한 4만여건의 신청이 접수됐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세계경제 위기는 미국의 자산시장에 뿌리를 둔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 각국 정부의 첫째 과제는 은행 부문을 시장경제의 힘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었고, 구제 대상 은행들의 다수가 “시스템 정합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은행 시스템 구제가 실물경제 부문의 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밝혀졌지만,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반하는 구제금융 정책이 수요 촉진책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경제대국들에서 자동차산업은 은행들만큼이나 시스템 정합적인 것으로 보였고, 따라서 은행 구제금융 다음의 과제는 신차 수요를 극적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과잉생산을 해온 산업부문에서 판매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 답은 바로 조직적인 낭비, 이론적인 표현을 빌리면 가격파괴를 통해서다. 독일에선 10년 이상 된 자기 소유의 차를 폐차하는 조건으로, 신차 구입 때 2500파운드를 보상해 준다. 그러나 이 제도는 50억파운드의 예산이 금세 바닥남에 따라 이달 초 기능을 상실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멀쩡한 자동차를 폐기하고 신차 생산에 귀중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 어리석음이 어떻게 정책이 될 수 있을까? 이에 관한 현명한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새 차 구매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예산과 시한을 한정함으로써 효과를 키우고 있다. 둘째, 일자리 보전에 대한 정치적 논의와 하이테크 자동차 산업을 통한 국가 위상 제고는 노조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다. 셋째, 새 차가 낡은 차보다 더 환경친화적이라는 주장은 환경 의식과도 부합된다.

그 단기적 효과는 명백해 보인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 신차 판매 감소에 따른 손실을 중고차 보상제를 통해 보상받았을 뿐 아니라, 몇몇 나라에선 올 상반기 신차 판매가 30%나 늘었다. 얼핏 보기엔 신차 보급의 환경보전 논리가 옳은 것 같다. 실제로 대형차 판매가 부분 감소한 반면, 중소형급 신차의 판매 증가세는 도드라졌다.

그러나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소비 자극책의 중독성은 부작용을 낳는다. 우선 과잉생산의 문제가 뚜렷해졌다.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려면 앞으로도 생산능력을 더욱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한 환경론조차 말발이 안 선다. 수만대의 과잉생산과 낭비적인 중고차 폐기는 정책 효과를 계산하는 데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고차 폐기 및 신차 보급을 통한 대기오염 가스 감소 효과를 내세울 때엔 앞서 언급한 환경 영향도 함께 설명돼야 한다. 그럴 경우, 포괄적인 환경평가는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회와 개인이 일자리뿐 아니라 은행들에도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근본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뿌리 깊은 두려움이 그런 결단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은행들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예산에서 수조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데 중고차 보상금을 고마워하고 탐을 내거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우리 자신의 건강과 환경을 파괴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우리는 진정 이런 방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가?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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