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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19 19:10 수정 : 2010.02.19 19:10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엄청난 지진으로 폐허가 돼버린 아이티에 세계 전역에서 도움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긴급구조에 관련된 이들이 재앙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먼저 전세계 강대국 정치 차원의 문제다. 아이티 대통령은 나라의 관문인 공항에 대한 주권을 미국에 양도했다. 미 해병은 아이티 공항을 장악하고 ‘작전’ 관할지역으로 삼았다. 미 정부는 미국이 다시 아이티를 점령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피하려 전전긍긍하지만, 문제는 이미지 차원이 아닌 듯하다. 브라질과 프랑스 정부는, 미군 수송기들에 공항착륙 우선권이 있는 탓에 수많은 구호품 수송기들이 제때 착륙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에 공식 항의했다.

문제는 인도주의적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 브라질 정부는 공항 통제권 문제에 불쾌감을 표했다. 9000명 규모의 유엔평화유지군을 지휘하고 있는 브라질은 ‘섬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이티의 재건 프로젝트는 중남미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이티의 전 식민종주국이었던 프랑스도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요구로 유럽연합은 질서 회복을 위한 수백명의 경찰을 아이티에 파견할 예정이다.

심지어 아이티 안에서조차 중요 관심사는 치안유지이며, 재해난민들의 비참함은 이런 논의의 ‘촉매 구실’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주요 언론들이 아이티의 참상에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물질적 피해 때문만이 아니다. 아이티 주민들은 기자들에게 왜 식량이나 물이 아닌 방송장비들만 잔뜩 가지고 오느냐고 묻는다. 현지의 참상에 이미 놀랐던 기자들은 이번엔 아이티 사람들이 공격적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 느낌은 “만일 식량원조가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면 폭력사태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는 식의 보도로 이어진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카메라들은 재앙을 스펙터클한 미디어 화면으로 만들었다. 각국의 구조대가 영웅으로 그려지는 모습은 거의 종군기자의 극작법(드라마투르기) 같은 인상이다. 언론 종사자들은 전세계에서 자발적 기부를 북돋움으로써 결과적으로 모금액 규모를 늘리고 구호단체들과 사주의 평판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대재앙의 현장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므로 메시지는 보도 이전에 이미 명료하다. 충격적인 상황의 희생자들을 보여줘야 한다. 아니면 대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또는 건물 잔해 더미와 그 속에서 삐져나온 맨손, 가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여줘야 한다. 한편 구호팀들은 프로페셔널하게 일한다. 그들은 전문가이며, 이성적인 구호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이티 현지인들은 방해가 될 뿐이다. 현지 주민들 중에도 구호작업을 돕겠다고 나선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제안은 너무나 빈번하게 무시됐다.

우리는 압도적인 위협들에 대해 감각을 닫아버리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려 한다. 충격적 경험에 대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뒷날 진지하게 대처한다는 게 전제된다면, 한시적인 응급조처로 적절할 순 있다. 하지만 근본적 대처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특히 지진참사 당사자들이 희생자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은 왜 살아남았는가 하는 절망감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미있게 바라보는 데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구조팀의 ‘전문성’에 기대는 것은, 권력이나 돈과 마찬가지로 이런 시각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자력구제엔 전문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온정적 간섭주의에 대한 저항도 포함될 수 있다.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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