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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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복식을 준수하지 않는 여성은 사회에 간통을 확산시키며, 결과적으로 지진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이란의 고위 성직자인 카젬 세디기의 이 말은 이란뿐 아니라 전세계에 ‘문화적’ 지진과 여진을 일으켰다. 이슬람권 여성들은 가족이 아닌 남성들에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도록 머리카락과 손목·발목까지 신체를 가리는 통옷 착용을 요구받는다. 적절한 복식(히잡) 착용은 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1979년 이슬람혁명 직후 이란 여성들에게 적절한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칙령을 발표하자, 그 이전부터 히잡을 입었던 여성을 포함해 다양한 계층의 이란 여성들이 거리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용감하게 저항했음에도 이들 여성이 히잡 칙령을 넘어서지는 못했으며, 대다수 여성들은 집을 나설 때에는 히잡을 입는 새 칙령을 준수하도록 강요받았다. 그 칙령이 경제문제나 외교정책만큼이나 사회의 여론을 양분해놓은 지 30년이 지났다. 왜 여성의 외모와 복식에 그처럼 집착하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신체를 가리는 법규가 무슬림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유럽과 미국 여성들도 오늘날 무슬림 여성들처럼 머리카락과 몸을 가렸다. 서구에서는 그것이 법이 아니라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는 풍속으로 강요됐다. 한국에서도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상류층 양반계급 여성들은 무슬림 여성들과 비슷하게 몸과 머리카락을 가려야 했다. 사회학자들은 여성을 남성을 위한 권력행사와 쾌락의 대상으로 보는 보편적 가부장제를 지적해 왔다. 여성들을 마치 전리품처럼 감싸둠으로써 다른 남성들의 눈길과 손길로부터 차단하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사회적 규율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공개적으로 노출되면 사회가 위험해진다는 이유다. 이 두 가지가 일반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감싸는 기제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사회학적 설명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란과 무슬림 사회에선 여성의 신체를 구속하고 여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켰던 바로 그 히잡이 많은(모두는 아니지만) 여성들의 권한을 강화해주는 수단이 되어왔다. 히잡의 강제착용을 거부하는 주장에서 자유로워지면서다. 1979년 히잡 칙령 이후 이란의 전통적 종교적 집안 출신의 젊은 여성들은 난생처음으로 공공의 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더는 가부장제도의 소유물로 취급받을 수 없는 강력한 인격을 형성해오고 있다. 예컨대 전통적 가치관에 결박된 부모들이 히잡 덕분에 딸을 대학이나 타지에 보내는 것에 안도감을 갖게 됐다. 젊은 여성들은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자립생활을 하고 대학에 다니면서 단독 인격체로서 독립적이고 근대시민의 권리와 친숙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 고등교육을 받고 활력이 넘치는 수많은 신세대 여성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여성 권리의 제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히잡 착용을 강제할 게 아니라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체가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받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란 성직자 세디기의 말이 이란 여성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여성들까지 대담하게 만든 역설은 흥미롭다. 미국 인디애나주 퍼듀대학의 한 여학생은 세디기의 말에 격분한 나머지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에게 뭔가 행동을 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며칠 새 미국 전역에서 20만명의 여성이 여성의 몸을 비하하는 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란 성직자의 여성혐오적인 표현이 지구의 다른 곳에선 ‘사회적 지진’이 된 것이다. 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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