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8.17 21:19 수정 : 2010.08.17 21:25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생명윤리학

‘투명성’이란 단어가 오늘날 광범위한 정책분야의 열쇳말이 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서비스 영역에서 ‘투명성 확대’가 화두다. 지난달 미국 의회를 통과한 금융개혁법도 은행과 금융업체들의 투명성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개혁법은 미국 안팎의 석유 및 광산업체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활동중인 나라의 정부에 지불한 돈을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많은 빈국의 경우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부는 축복이라기보다 저주다. 부패한 통치자들은 석유·광산업체로부터 수십억달러의 돈을 챙겨 개인적 사치 자금으로 탕진하거나 국내 민주화운동을 분쇄하기 위한 무기를 구입할 수 있다. 투명성 하나만으로 그런 부패 고리를 막을 순 없다. 그러나 통치자가 얼마나 사익을 얻는지, 누가 그들에게 돈을 대주는지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업들이 독재자들에게 돈을 대줌으로써 그 나라의 자원 개발권을 통째로 차지해 돈을 벌려는 태도를 바꿀 것이다.

지난달엔 투명성의 또다른 형태가 큰 주목을 받았다. “공공대중이 마땅히 봐야 할 자료들을 공개하는 익명의 글로벌 단체”를 표방하는 위키리크스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기밀자료 9만2000건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3년간 미군의 관타나모 수용소 관리지침, 아프리카 해안의 화학물질 폐기, 영국 극우정당 당원 명부, 이라크 미군 헬리콥터의 민간인 12명 사살 동영상 등 민감한 자료들을 공개해왔다. 그러나 최근 아프간전 관련 자료들을 공개한 것은 큰 논란을 낳고 있다.

<뉴욕 타임스> <가디언> <슈피겔> 등이 위키리크스의 자료를 미리 제공받아 일부를 보도했다. 위키리크스의 창설자 줄리언 어산지는 공개자료들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미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편에선 그 자료들이 기존의 아프간 관련 논의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반박한다.

위키리크스는 웹사이트에 “자유롭고 제약받지 않는 언론만이 정부의 기만을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다”는 미국 대법원의 판시를 인용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또 “그간의 폭로가 수백가지 개혁의 촉매가 됐”으며 “열린 거버넌스는 좋은 거버넌스를 촉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열린 정부’의 지지자들 중에도 일부는 위키리크스가 너무 나갔다고 생각한다. 미국 과학자연맹의 ‘정부의 비밀에 대한 프로젝트’ 책임자인 스티븐 애프터굿은 위키리크스가 ‘열린 사회의 적’에 속한다고 본다. 법치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위키리크스는 자료 공개 때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인명들을 삭제하기 위해 아프간전에 관한 1만5000건의 추가자료 공개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어산지 대표는 이미 공개된 자료들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지만, 폭로 행위 자체는 옹호했다. 나아가 위키리크스는 웹사이트에서, 자료 공개가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자료가 공개되지 않을 경우의 결과와, 자료 공개가 정부와 기업이 더 윤리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분위기는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지나친 공개성인가? 라트비아 대학의 한 인공지능 연구자는 올해 초 은행 경영자들의 대외비 소득 기록을 공개해 ‘현대판 로빈 후드’라는 칭송을 받았다. 노르웨이에선 매년 정부가 거의 모든 납세자들의 소득과 재산을 공개한다. 이건 과도한 투명성인가? 그렇다면 왜 그런가?


테러집단들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현대 세계에서 정부의 완벽한 투명성을 모색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다. 때로는 비밀이 보장돼야만 좋은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더 투명할수록 더 좋은 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도 마찬가지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생명윤리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계의 창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