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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02 21:06 수정 : 2010.09.02 21:06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활동가

1992년 미국 대선 때 조지 부시 후보 쪽은 텔레비전 시트콤 <머피 브라운>에 시비를 걸어 정치적 논란을 낳았다. 여배우 캔디스 버겐이 연기했던 이 드라마의 주인공 머피 브라운은 당시 텔레비전 캐릭터로는 ‘비정상’적이었다. 싱글맘을 호의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부시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댄 퀘일이 시트콤을 비난한 것은 싱글맘을 ‘낙인’찍기보다 이런 ‘비정상’적 묘사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이었다.

싱글맘들이 핵심적인 미국적 가치의 파멸 조짐을 드리우는 것으로 묘사되면서 그들에 대한 손목 비틀기가 이어졌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페미니스트라거나 무책임한 사회적 기생충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아이들의 이익보다 더 우위에 둔다는 것이었다.

시대가 얼마나 바뀌었나. 당시 싱글맘들이 비이성적인 혹평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에는 싱글맘들에 대해 똑같이 비이성적인 칭송이 뜨고 있다.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싱글맘에 대한 표현은 기존의 이기적인 여피족(고소득 전문직)이나 마약에 찌든 여자에서 벗어나, 쾌활하고 용감하며 기혼여성보다 덜 비루한 여성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실 싱글맘들은 새로운 모성의 이상형이다. 그들은 독신이라는 부담을 무릅쓰고 아이를 양육할 만큼 이타적이고 치열한 모성적 의지를 지닌 여성이다. 여배우 앤절리나 졸리가 캄보디아에서 입양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패션잡지 <배니티 페어>에 실려 화제가 됐다. 매력 넘치는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고급호텔의 침대에서 찍은 사진은 싱글맘을 멋지고 화려하게 보이게 했다.

미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의 딸 브리스틀(19)도 대단한 싱글맘과 패배자 아빠의 이야기로 채색되고 있다. 임신한 브리스틀이 남자친구와 갈라섰을 때, 이들 모녀는 술이나 마시는 철없는 젊은 아빠를 반대한 영웅적인 엄마로 떴다. 브래드 핏과 갈라선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턴도 42살이 됐지만 더이상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지 않으며, 홀로 입양아를 키울 준비가 돼 있다.

싱글맘 찬양은 미국의 일부 여성들, 그리고 미국 주류언론에서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여성들의 집단적 분노를 나타낸다. 1990년대에는 불안과 좌절 속에 남편을 기다리는 여성을 ‘생체시계’가 똑딱거리는 것으로 비하하는 묘사가 생겼다.

사실 미디어의 메시지는 끊임없는 잔소리와 비난이었다. <뉴스위크>는 커버스토리에서, 나이든 독신여성은 남편을 찾는 여성보다 테러리스트 공격에 가담할 공산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었다.

어느 순간, 여성들은 남자가 결혼반지를 선물하는 고고한 사회적 미덕을 거부하고 고정관념을 뒤집을 만큼 힘이 커졌다. 여성들이 일자리를 갖고 스스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훨씬 멋질 수 있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신모성을 미화하는 것이 현실적이진 않지만, 여성의 대중문화가 모든 잠재적 남편과 아빠들에게 달콤한 복수의 판타지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가정을 외면하고 도망가는 남자들, 남편이나 아빠가 될 생각을 하지 않는 남자들, 섹스만 원하고 출산과 양육을 원치 않는 남자들에 대한 복수 말이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 방송 진행자 빌 오라일리는 최근 여배우 애니스턴이 제작중인 싱글맘에 관한 영화가 열두세살 소녀들에게 “너희는 남자가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맞다. 영화는 일에 치이고 짜증나고 아이를 갖고 싶어 안달인 여성, 청혼을 기다리느라 몇년을 보냈을 여성들에게 “사실, 당신에게 남자는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추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의 종말을 뜻하는 건 아니다. 대다수 여성은 육아에 협조적인 파트너라는 소박한 환상을 선호한다. 그러나 싱글맘과 독신모성에 관한 새로운 이미지는 여성들에게 주홍글씨를 강요하는 게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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