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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2 18:28 수정 : 2010.11.12 18:28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활동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영국 정부는 일찍이 선진국은 시도한 적 없는 가장 가혹한 공공부문 재정 삭감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장관은 대학 보조금을 40%나 깎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대목은 기업들한테 유리한 과학이나 공학 분야보다는 예술과 인문학 분야가 더 큰 표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영국에서 이처럼 직접적인 싸움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지만, 예술과 인문학 분야에 대한 ‘전쟁’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0년대에 이런 정책과 선전의 흐름을 이끌면서 국립예술진흥기금을 해악으로 치부해버렸다. 미국 공화당 정부는 발레, 학교에서의 시 교육, 조각에 관한 예산을 삭감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같은 선동가는 논쟁적 예술작품들에 대한 공격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했다.

하지만 캐머런 정부의 접근방식은 시대에 뒤진 것이라는 비웃음을 사는 낡은 우파의 전술보다 사악하다. 미국의 뒤를 따르는 영국 정부의 예산 삭감은 개방적이면서도 활력이 넘치고, 억누르기 어려운 시민사회와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에 대한 압력을 보여준다.

옛 소련 진영에서는 자유와 같은 금지된 주제를 작품에 새겨놓은 시인, 극작가, 만화가, 소설가가 비밀경찰의 표적이 됐다. 오늘날 그런 사람들은 이란, 시리아, 중국, 미얀마 같은 곳에서 위협받고, 침묵을 강요당하며, 고문당한다.

미국이나 영국이 그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공격은 시민들을 고분고분하고 우둔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큰 발걸음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전쟁은 갈수록 기업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무지하고 수동적인 시민과 정부를 만들어냈다.

예술과 인문학 교수들은 그들의 일이 왜 가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에 아주 서투르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자유의 기풍을 강화하는 것과 별개로 이런 학과들은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시, 소설, 역사, 철학이 제공하는 능력인 꼼꼼히 읽고, 증거를 추구하고, 이성적 논법을 전개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언어와 비교문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캐머런은 분명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의원들은 1차대전 발발 원인이나 계몽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기자들은 힘있는 기사를 쓰지 못하고, 검사와 판사는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보요원과 외교관은 주재국 언어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래의 영국을 떠올려보자. 오늘날 미국과 같은 모양이 될 것이다.

당장,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에 앞서 전통 교육의 상징인 이튼스쿨을 다닌 캐머런은 영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날려버리고 있다. 영국은 제국의 지위를 잃은 뒤에도 정책 결정자들이 흡수한 문화와 교육 때문에 상당한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신흥국 학생들은 그런 매력 때문에 매년 수백만파운드를 들여 영국 대학에 공부하러 온다. 캐머런이 그런 문화를 키운 대학들에 대한 보조금을 깎은 것은 영국의 앞날에서 세계적 수준의 정치가, 문필가, 혁신적 문화인들을 없애는 짓이다. 영국은 대신 질 낮은 텔레비전이 길러내고 작은 섬나라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 시원찮은 테크노크라트들을 갖게 될 것이다.

삭감된 예산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캐머런과 그의 이념적 후계자들은 미국처럼 공공정책이 기업의 이익과 직결되는데도 침묵하고만 있는 시민들로 가득한 나라를 만들 것이다. 캐머런한테는 예산 삭감이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활기와 문화, 민주주의의 전통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온 영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는 그 비용이 훨씬 높다.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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