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4 19:21
수정 : 2011.06.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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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폴만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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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진보를 선도하고
첨단기술에 민감한 독일의
원전 포기 배경은 무엇인가?
3월11일 일본을 휩쓴 지진과 해일(쓰나미)에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지금도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되고 있는 방사능이 사람과 자연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은 원자력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합리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지 자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독일인들은 원자력에 대한 태도를 정리했다. 보수-진보 연립정부는 늦어도 2022년까지 원자력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극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갑절에 이르는 세계 4대 경제대국 독일은 재생가능 에너지원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늘려서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충족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독일인들이 제정신을 잃은 것인가? 기술적 진보를 선도하고 첨단기술에 민감한 독일이 이처럼 원전 포기 결정을 내린 배경은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점점 더 많은 독일인들이 원자력 에너지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특히 25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반감은 거세졌다. 그 몇 해 전부터 시민들이 주도한 환경운동은 독일에서 큰 지지를 받기 시작하여 녹색당으로 알려진 정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2000년 진보 성향의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원전 사업자들의 합의를 얻어 2023년까지 원자력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야심찬 친환경 산업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재생가능 에너지원의 사용을 확대하고 기업·가정·교통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현 독일 정부의 원자력 포기 결정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둘째 이유는 이러한 산업정책의 성공에 있다. 즉, 대다수 전문가와 시민들은 재생가능 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하고 경제 및 생활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더한다면 현재의 탄탄한 경제적 성과를 유지하면서도 원전 포기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책 도입에도 위험은 따르기 마련이다. 불과 10년 안에 모든 원전을 폐쇄하려면 막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하지만 위험이 뒤따르는 만큼 기회 또한 크다. 새로운 투자는 독일 경제의 신성장동력인 신규 산업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새로운 산업정책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면 독일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수출 기회를 갖게 된다. 이미 독일에선 원자력 산업의 일자리 수가 약 3만5000개에 그치는 반면 친환경 부문의 신규 일자리 수는 그 10배에 달하는 37만개를 넘어섰다. 친환경 산업이 활성화하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탄생했고, 세계 시장으로 점차 뻗어나가는 이들 기업 덕분에 독일 에너지 사업의 다각화가 이루어졌다.
독일만 에너지 정책을 재고하고 있을까? 스위스·덴마크·이탈리아가 원자력 포기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일본 정부도 에너지 정책 재고를 검토중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른바 ‘원자력의 글로벌 르네상스’가 제대로 막을 올리기도 전에 끝났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조만간 발표할 연구 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고 전에도 원자력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는 세계적 징후는 없었다. 그 이유로는 원전 건설 비용 급등과 원전 폐기물의 영구적 보관 및 처리 문제, 군사적 용도의 핵 확산 우려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미래의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각국의 몫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원자력을 포기하는 데 이번 독일의 정책 결정이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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