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로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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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창출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량·생산성만 들여다보는 것 우린 포스트산업시대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첨단 서비스업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시대 말이다. 그러나 국가가 제조업의 건강성을 무시하는 건 위험하다. 첨단기술 서비스는 특화된 기술과 창조적인 소수의 일자리를 필요로 하므로 전체 고용창출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제조업은 적당한 수준의 기술을 지닌 수많은 노동자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괜찮은 보수를 제공할 수 있다. 제조업 부문은 전세계 중산층이 형성되고 성장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활발한 제조업 기반이 없는 사회는 빈부 양극화가 심해지기 십상이다. 제조업은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민주주의 활력의 중심일 수 있다. 미국은 최근 수십년간 꾸준히 탈제조업화를 겪었다. 글로벌 경쟁과 기술 변화 때문이다. 1990년 이래 미국의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5% 가까이 떨어졌다. 만일 제조업의 노동생산성과 소득이 나머지 경제부문보다 월등히 높지만 않다면 그것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여타 부문보다 75%나 높다. 제조업 부문에서 방출된 노동력을 흡수한 서비스산업은 온갖 잡동사니의 집합이다. 그 첨단에 있는 금융·보험·비즈니스 서비스 등만이 제조업과 비슷한 생산성을 보여줄 뿐이다. 이 부문에서 일부 신규 일자리가 창출됐지만 많지는 않았을뿐더러, 그것도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얘기다. 신규고용의 대부분은 서비스업종에서 나왔는데, 전체 경제에서 가장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들이다. 이러한 일자리 이주는 1990년 이후 매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0.3%포인트씩 깎아먹었다. 생산성이 낮은 노동(일자리)의 증가는 불평등 심화에도 한몫을 한다. 미국의 제조업 고용 감소는 2000년 이후 가속화됐다. 미국과 중국의 고용 변화에서 제조업 부문에는 묘하게도 ‘음(─)의 상관관계’가 있다. 중국의 제조업 고용이 가장 늘어난 반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가장 많이 줄었다. 영국도 1980년대 이후 줄곧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일자리 증발이 급증했다.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핵심 제조업은 생존 그 자체다. 제조업과 여타 산업부문의 생산성 격차는 선진국보다 훨씬 크다. 일단 제조업이 탄력을 받으면 비숙련노동자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산업화는 1950~60년대 남유럽과 1960년대 이후 아시아의 급속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자동차 부품이나 기계공업 같은 개별 제조업은 경제학자들이 ‘무조건적인 수렴’으로 표현하는 현상, 즉 개도국의 제조업이 선진국과의 생산성 격차를 저절로 좁히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여타 경제부문의 생산성 성장이 정책과 외부 환경에 좌우되는 ‘조건부 수렴’과는 전혀 다르다. 제조업 평가의 전형적인 실수는 고용창출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량 또는 생산성만 들여다보는 것이다. 예컨대 남미권이 지역경제를 자유화하고 국제교역을 개방한 이후 제조업 생산성이 급속히 향상됐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서비스업과 같은 열악한 고용 환경을 맞게 됐고 경제 전반의 생산성은 정체됐다. 아시아 경제 역시 개방을 했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제조업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제조업의 높은 수익이 보장되도록 통화 경쟁력을 유지했다. 그 결과 제조업 부문의 고용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제조업의 중요성은 필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그런 추세가 노동자들이 숙련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면, 경제의 생산적 구조와 노동력 사이에 위험한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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