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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26 19:18 수정 : 2011.08.26 19:18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급속히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외교적 공조를 모색하는 한편
견제 구도 형성을 추진해 왔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년 만에 러시아를 찾았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자세가 눈길을 끈다. 이번 방러를 앞두고 러시아는 5만t의 식량지원을 표명해 김정일 위원장이 국경을 넘기 전날인 19일 그 첫 배편이 북한에 입항했다. ‘실리’를 토대로 한 협력이라는 자세를 강조한 예라 할 수 있다. 극동을 방문한 지 얼마 안 되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위해 또다시 모스크바로부터 수천㎞를 날아왔다.

러시아는 2000년대 초반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힘을 기울인 적이 있다. 2000년 7월 당시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직접 방문한 데 이어 2001년과 2002년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2년 사이에 3번이나 정상회담을 여는 등 밀접한 관계를 과시했다. 북한으로서는 당시 미국 부시 정권의 강경정책에 대한 견제와 북-미 대화의 조정 역할을 러시아에 기대한 것이었다. ‘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추진하던 푸틴 대통령의 외교노선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10년 가까이 북-러 관계는 정체를 거듭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를 둘러싸고도 러시아는 중국보다 강경한 자세를 취해 북-러 관계는 틈이 벌어진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벼랑 끝 전략에 휘둘린 푸틴의 좌절과 실망이 한 요인이라고 분석되기도 했다.

2008년 5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러시아는 동아시아 지역에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푸틴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색채를 내려는 메드베데프의 의욕도 엿보인다. 하지만 지정학적·경제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중시하는 러시아의 전략 구상이 기본적으로 배경에 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이 초점이다. 급속히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러시아는 상하이협력기구(SCO)나 신흥대국협의체인 브릭스(BRICS)라는 틀을 통해서 외교적 공조를 모색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이를 견제하는 전략구도 형성을 추진해 왔다. 오는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최초로 정식 참가하며, 내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처음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회의를 주최하게 된다. 이를 앞두고 지난해 무렵부터 러시아의 외교분야 싱크탱크들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양국간 및 다국간 협력 구상에 관한 연구가 한창이라고 전해진다. 과도한 대중국 의존을 우려하는 북한과의 관계 강화도 이런 맥락에 있다. 경제적으로도 자원대국인 러시아는 세계적 성장 중심인 동아시아 지역과의 통합을 시야에 두고 있으며, 이 점에서 한-러 관계도 중시된다. 특히 사할린 해저 가스의 유력한 수출 대상으로 현재는 중국과 더불어 한국이 꼽히고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남북한을 연결해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도와 가스관의 추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하부구조와 동력분야의 거대한 계획’을 위한 러시아·북한·한국의 협조가 ‘3개국에 다 같이 유익하다’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했다. 이런 협력이 남북간의 ‘대화와 신뢰 조성’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러시아 쪽의 의향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의 ‘중국화’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는 최근의 북-중 관계 심화와는 달리, 북-러 협력은 남북한 경제통합의 토대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 관리체제적인 성격을 지닌 미-중 협력의 추이를 주시하면서, 우선은 남북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계기로서 러시아의 지역외교를 활용하는 방도도 검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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