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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09 18:10 수정 : 2011.09.09 18:10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가

영국에서 들려오는 폭동 소식을 듣고, 로버트 더글러스페어허스트의 흥미진진한 찰스 디킨스 전기 <비커밍 디킨스>를 읽고 보니, 삶과 예술은 서로 공명하는 것 같다.

폭동 사태를 겪은 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아동법원의 부활과 폭동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엄혹한 판결을 비롯한 증오에 찬 아이디어들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폭도들에게 길거리 청소를 명령해 대중의 증오에 노출되도록 한다든지,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폭도의 가족을 공공주택에서 쫓아낸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캐머런은 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사람을 체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단하고, 경찰에 더욱 강력한 권력을 주는 것도 시도하고 있다.

디킨스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시대) 초기의 영국에서 사법부는 독립되지 않았고, 신문은 정부의 검열을 받았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가난한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지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경찰은 가난한 이들에 대해 견제받지 않는 폭력적인 권한을 가졌다.

나는 약탈자와 폭력배들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캐머런이 주장한 일련의 벌칙이 나라를 어디로 이끄는지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안전망이 없어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영국이 어떤가도 익히 알고 있다. 150년 전 영국에선 가난한 아이들은 전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대학은 그들에게 환상 속에 있는 존재였다. 캐머런의 통치 아래 세 곱절이나 뛴 등록금은 이런 시절을 다시 되풀이하게 만들 수 있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요즘 빅토리아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와 중산층을 쏙 빼놓은 채, 극소수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더글러스페어허스트가 책 속에서 감동적으로 묘사한 183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어린이들이 12살의 디킨스처럼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하루에 18시간씩 어두컴컴한 공장에서 일을 했다. 꾼 돈을 갚지 못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채권자들이 세운 감옥에 보내졌다. 디킨스의 아버지 존도 40파운드를 빌리고 똑같은 꼴을 당했다. 아무런 복지혜택이나 고용보장을 받지 못한 중하층 가족은 언제나 질병이나 해고의 공포 속에 살았다. 질병이나 해고는 그들에게 곧 길거리로 내몰리는 파멸을 뜻했다. 1830년대 런던에서, 여성의 3분의 1은 하녀였고, 또 다른 3분의 1은 성매매 여성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회복지 없는 영국의 모습이다.

반대로, 후기 빅토리아 시대(1850~1880년대)에는 공공진료소나 의무 초등교육을 포함한 많은 사회복지 장치가 마련됐다. 소년원 제도와 극빈층에 대한 기초적인 구제, 공공 상하수도, 경찰력의 지자체 귀속 등등.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템스강 둑이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 공공투자도 모두 이 시기에 시작된 것이다.


캐머런과 다른 서구 보수주의자들이 과거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복지의 약화와 기본적인 서비스의 민영화가 새롭거나 혁신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현재 영국 정부가 없애려는 많은 것들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름끼치는 상태에서 살고 있었던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오늘날의 보수 정치인들이 계속 정권을 잡게 된다면, 어둡고 위험하고 무지했던 과거는 다시 되돌아올 것이다.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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